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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 보기   날짜 : 2007/04/10  조회수 : 4388  
 [사상계] 머리 숙이라 민권 앞에 - 혁명상 미성공
혁명상미성공 ( 革命尙未成功 )〉이란 말은 30여 년 동안 중국혁명을 지도해 온 손문 선생이 1925년 북경 일우( 一隅 )에서 객사를 하게 될 제 몇몇 동지들에게 남긴 유언 〈혁명상미성공 ( 革命尙未成功 )〉이라는 말의 첫구절이다. 이 문귀는 제2차세계대전중 중국에 망명의 기회를 가졌던 나에게는 너무도 낯익은 말이다. 도처의 관공서, 학교, 군문( 軍門 ) 등 모든 공공기관에는 빠짐없이 선생의 유영( 遺影 )을 중앙에 걸고 양쪽에 이 유훈( 遺訓 )을 붙여놓았던 것이다. 그때는 그다지 마음 깊이 새겨지지 않았던 구절이건만 일제의 폭정이 물러간 8·15 이후 항상 나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떠오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땅에서 일제를 몰아낸 주체가 이 나라의 항일혁명세력이 아니고 연합군이었으며 그 뒤의 수습을 맡은 이가 남한에 미( 美 )군정, 북한에 소( 蘇 )군정이었다. 북한에서 소군정은 자가( 自家 )의 원정계획( 原定計劃 )대로 포악무도한 강압정책을 자행하여 북한을 자기의 완전한 괴뢰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고 이 나라의 실정에 어둡고 민심의 향방조차 가리지 못한 미군정은 실정만을 거듭한 나머지 남한을 혼란과 부패의 온상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8·15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머리를 못 들고 이리저리 쫓겼던 일제의 주구들은 미군정의 관대하고도 안이한 정책의 은총을 받아 행정기술자라는 명목으로 대한민국의 모체가 된 미군정청 각 부문에 깊이 파고들었다. 이들은 이 기회에 일제에 아부하던 그 능숙한 교태를 다시 미군정에 돌려 그들의 마음을 거머쥐는 데 성공하였다.
  기회만을 노리던 공산주의자들은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미군정을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미군정을 가리켜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소굴이요 일제주구들의 온상이라고 한 것이다. 정치적 식견에 어둡고 정치생활의 경험을 가져보지 못한 우리 국민에게는 이러한 비난은 너무도 어필하였다. 어제까지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일제의 군문( 軍門 )이나 전선노무자( 戰線勞務者 )로 몰아 보내기에 여념이 없던 그 충복들이 또다시 총칼을 둘러메고 치안을 유지한답시고 거리에 나서게 되니 국민의 눈살은 자연히 찌푸려지고 그들에 대해 규탄하는 원성은 강산을 뒤덮었으며 이에 더욱 신바람이 난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은 남한의 치안상태를 더욱 어지럽게 하였다.
  이에 미군정은 조속히 치안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비교적 강압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그들의 이른바 유능한 행정기술자들은 자기들을 규탄하는 모든 세력을 가차없이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해방 후 그래도 양심있는 청년들이라고 하던 많은 사람들이 치안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유치장으로 끌려가게 되고 그 창구멍으로 온정의 미소를 가장하고 찾아든 공산주의자들은 참다운 애국자요 믿을만한 지도자들로 인정을 받아 많은 젊은층의 지지를 얻기 시작하였으니 이 같은 일들은 전국 각지에서 똑같은 형태로 반복하여 나타났다.
  이같이 일제의 앞잡이들은 미군정을 배경으로 자가의 호신책 내지 사리에 이끌려 그 처신에 해로울 만한 주위의 인물들을 제거할 수법을 생각한 끝에 〈빨갱이〉란 누명을 뒤집어씌웠고 그들이 조작한 이 〈빨갱이〉들은 갈 곳 없어 공산당이 되어버리곤 하였던 것이다.
  1948년 5월 총선거가 실시되고 그 결과로 헌법이 제정되고 정·부통령선거마저 전국민의 환호리( 歡呼裡 )에 끝마치고 그 해 8월 15일을 기하여 해방 3년 만에 지루하던 군정을 벗어나 독립국가로의 면모를 갖추었으니 이 나라 백성은 군정에서 받은 실망과 상처를 우리 정부에서는 완전히 씻어줄 것으로 믿어 환희의 꽃을 피웠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해방 직후가 아닌 그 3년 후인 이날에 이르기까지에는 당연히 숙청되었어야 할 그 대상자들은 그들의 구명( 救命 )의 터전을 완전히 닦아놓았고 확고부동한 기성기반을 재형성하는 데 성공하여 오히려 이를 건드리는 자가 해를 받게 되어버렸다. 혁명과 그 수습의 주객의 전도로 말미암은 미온적인 정책은 끝내 민족정기를 말살하여 버렸고 의당히 받았어야 할 그들은 응징은 고사하고 일약 건국공로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으니 이에서 더 통탄할 바 없지 않은가. 이렇게 하여 위기 모면할 수 있었던 흉악한 무리들은 다시 이승만 정권을 둘러싸고 좀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각 관공서는 물론 교육기관에 이르기까지 일제 식민정권의 벼슬자리를 지낸 흔적이 없는 이는 접근이 용허되지 않을 정도이며 이 같은 이른바 행정기술자들은 후배들의 진로를 가로막는 한편 현대사회를 이끌어갈 수 없는 무능을 미봉키 위하여 그들이 습득한 포악한 식민지관리의 악풍을 그대로 모방 답습하기 시작하였다. 상( 上 )에는 아첨, 하( 下 )에는 강압, 이러한 관료기풍을 확립하여 놓은 그들은 이( 利 )를 위한 야합, 세( 勢 )를 위한 분리를 일삼아 종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회상을 이룩하였고 그들은 이산( 離散 )은 항상 모든 기업면의 흥망을 좌우하는 현상을 초래했으니 악성적인 관료금융으로 시종하였던 이( 李 )정권 12년 간의 악정이 곧 이 나라의 모든 중소생산성( 中小生産性 ) 기업을 파탄시킨
것이다.
  한편 이승만이 정권유지를 위하여 취한 바 야비한 세력분리정책은 이조 5백 년의 당쟁의 추사( 醜史 )를 재연시켜 이 당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납과 야합은 한계를 넘는 부정의 감행을 보게 하였다. 한편 애국자 백범의 살해범 같은 흉한을 서울거리에 활보케 한 예로써 이승만의 비위에만 맞는 일이라면 어떠한 행위라도 용납이 되는 심증을 얻은 무리들은 또한 공명을 다투기 시작하였으니 이 공명심은 부정이나 살인쯤은 예사로운 일로 알게 되었다.
  이같이 하여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인사들은 백안시를 당하고 그래도 조국독립을 위하여 남북만주나 중국대륙에서 일생을 바친 혁명선배들의 유가족들은 가두에서 문전걸식을 하게 되는 등 의( 義 )는 떠나고 불의만 성장하여 충전하는 세력으로 이 땅을 뒤덮게 되었다.
  누가 다시 애국을 하리오. 누가 다시 의( 義 )에 살리오. 누가 자기의 몸을 민족의 흥망을 거는 제단에 불사르리오.
  6·25가 일어났다. 당연히 받을 채찍이 땅에 임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치 않아 그래도 이 백성을 공산역도( 共産逆盜 )들의 손아귀에 아주 넣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성이 사는 이 사회에 누적된 죄악의 대가는 충분히 지불케 한 것이다. 신은 속죄의 제물로 이 땅의 수천 만 순정무구( 純情無垢 )한 선남선녀들의 피를 받으신 것이다. 그러나 간악한 무리들은 반성과 참회는 고사하고 공산침략을 내가 막았다는 듯이 다시 우쭐대기 시작하였으니 그들이 가재( 家財 )와 그 가족들을 실어놓은 배를 부산 앞바다에 띄워 놓고 도피에 혈안이 되었던 그 사실을 백성은 모르리라는 듯 시치미를 떼어버린 게 아니었던가. 이후 이 무리들은 더욱 자라 백성을 초개처럼 깔보고 영화를 제왕처럼 누려가며 계속 누려야 할 영화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양으로 갖은 횡포를 다하여 온 것이니 이 모든 사태는 두말할 것 없이 당연히 응징되었어야 할 반역도배들을 용납한 이 사회의 죄인 것이다. 충분한 보복이 없이 민족정기를 살리지 못한데 모든 원인을 돌릴 수 밖에 없다.
  낡고 썩은 세대는 그 권세와 향락을 계속 누리고자 권모와 술수로 일을 삼고 있는 동안 〈 새로운 의( 義 )의 세대 〉는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보다 못해 마침내 분통이 터져 일어선 이 새로운 세대는 독재와 싸우고 부패를 무찌르는  전선에 용감히 나섰다. 국민은 어린 아들 띨들에게 박수와 환성을 보냈다. 그러나 그 무도한 악당들은 맨주먹으로 달려드는 어린 가슴에 총을 겨누어 하나 둘씩 쓰러뜨리기 시작하였다. 이에 성난 의( 義 )의 용사들은 앞을 다투어 가며 죽음의 골짜기를 찾아 달렸다. 백을 넘고  2백을 지나 천여 명의 어린 의( 義 )의 생명은 피를 뿌리고 쓰러졌다. 그러나 잔학한 악의 무리들은 굶주린 이리떼들같이 거리를 휩쓸며 의( 義 )의 생명을 모두 삼키려 하였다. 이 나라의 전시민은 내 아들 내 딸의 뒤를 따라 일어났다. 악은 그 극에 달하면 멸망하는 것, 마침내 이 〈의의 세대〉는 독재를 무찌르고 부패를 파헤쳤다. 그리고 그들은 선배들에게 잘 수습하여 줄 것을 부탁하고 물러서버렸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하나의 비극을 예상케 된다.
  4월혁명을 가리켜 이런저런 호칭을 한다. 혹자는 의거, 혹자는 정변, 또 어떤 이는 4·19사태, 또 다른 이들은 개혁 등 각양각색으로 부르고 있고 아직 공식적인 호칭이 작정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종래에 세도를 부리던 층은 혁명이란 말을 쓰기를 꺼려 할는지도 모른다. 또한 현과도정부도 이런 자극적인 명명을 회피할는지 모른다. 혁명은 무섭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네들인지라 그럴 것이고 또한 사실상 이( 李 ) 정권을 그대로 상속받은 상속정권인 현정부로서는 혁명이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이 사태를 혁명적으로 해결치 못하고 넘어간다면 불원한 앞날에 더욱 처참한 비극이 우리 눈앞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모든 여건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당연히 4월혁명이라고 불러야 하며 이에 따라 모든 수습책이 혁명적 기틀 위에서 움직여져야 한다.
  후회가 앞서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치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혁명의 선봉자가 그 수습의 능력이나 기틀을 가지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었고 그 주체 또한 학생들이었으니 이( 李 ) 정권을 타도한 마당에 이르러서는 혁명의 주인들은 그 임( 任 )을 담당할 능력이 없어 스스로 뒷걸음질쳐 버리고 〈혁명은 내가 했노라〉 〈독재와 싸운 것은 나노라〉 〈학생의 배후조종자는 나노라〉고 나서는 대낮의 도깨비들의 등쌀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현실이 빚어지고 말았다. 이 통에 살아야겠다는 반혁명분자들 독재의 앞잡이들은 저마다 재빠르게 새로운 단장을 하고 수염을 내리쓸며 나도 이( 李 ) 정권하에서 이런 서러움을 당하였고 저런 투쟁을 하였노라고 제법 의젓한 모습으로 얼굴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형상은 미군정이 8·15이후 우리 사회를 걷잡을 수 없는 구렁에 몰아넣은 것과 똑같은 과오를 과도정부가 범하게 된 데서 시작된 것이다.
  피를 보지 못한 혁명은 가라앉지 않는 법이다. 혁명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 우리 정계에는 지배적인 것 같다. 그러나 백성의 마음속의 울분은 가셔지지 않았다. 혁명재판소 하나를 설치 못한 과도정부가 백성의 신망을 모을 수가 없었음은 당연한 귀결이리라. 그러니 그 명령의 권위는 떨어지고 행정력은 중학생들의 패싸움 하나를 제대로 말릴 수 없는 정도가 된 것이다.
  우리 민족성은 너무도 로맨틱하다. 역사적으로 활개를 펴본 날이 없고 외세에 짓눌려 서글픈 노래가락이나 부르며 지나던 백성이다. 그러니 그 포악한 이승만이 이화장으로 걸어가겠다던 날 이 정서적 백성의 마음은 일단 가라앉았고 또한 흉악한 음모가족 이( 李 ) 일가의 자살의 보도로써 들뜬 민심은 거의 가라앉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당연히 뒤따라 있었어야 할 원흉들에 대한 재빠른 처단은 날을 끌기 시작하고 때를 놓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도정부는 혁명정권이 아니고 상속정권이니 이 얼굴 저 얼굴을 골고루 돌봐줘야 할 입장이었음을 이해치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좀더 애국적이었더라면 그 같은 낯내기정책은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좀더 절실하게 백성의 편에 섰던 이들이었다면 그 같은 미온적 태도는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로 사회의 혼란과 정계의 새로운 부패는 확대조장되어 가되 막을 길이 없어지고 4·19에 순수하게 뭉쳤던 학도들의 마음마저 갈라놓아 그날의 순정을 그리기는 하되 찾을 길 없는 오늘을 빚어놓았다.
  과정( 過政 )에 대한 여론은 나빠졌다. 부득이 원흉들을 붙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3심을 거친다는 기나긴 시간의 여유를 가지게 하여준 것이다. 2,3년을 끄는 동안에 재주껏 해보라는 심사가 뚜렷이 보인다. 여론에 몰려 부정축재의 조사를 착수하였다. 자수를 하라고 하였다. 몇몇 부정축재자들이 자수를 하였다. 지극히 형식만의 자수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장난이었다. 지극히 형식만의 자수구실은 제법 명분이 서는 듯한 속임수이다. 재무당국자는 우리는 탈세한 부분을 받아들이면 그뿐이니 다음일은 신정부가 하라는 태도의 발언을 하였다. 이승만에게서 상속받은 정권의 각료들이니 이승만이 길러놓은 재벌들을 보호해 줄 책임도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도 심각하게 국민을 우롱하는 언동이다. 너무도 혁명의식을 갖지 않은 증좌이다. 물론 신정부가 하라는 논리에는 일부 수긍할 바 없지도 아니하다.
  그러나 다소간의 혁명의식이라도 가지고 각료의 자리를 채운 이들이라면 수임사( 受任事 )에 좀더 책임 있는 강한 조치로써 신정부로서는 움직일 수 없는 혁명적인 기성사실들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한다. 다만 뒷전에 서서 굿이나 보다 떡이나 얻어먹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일한 자리들이라면 이에서 더 큰 죄악은 없을 것이다.
  4월혁명의 결실로 7·29총선거전의 서막이 벌어졌다. 그 많은 투사들이 앞을 다투어 입후보등록을 했다. 이렇게 많은 투사들이 있으면서 왜 이( 李 ) 정권과 싸우는 데는 어린 이들만을 내세웠던가 하는 의아심을 금할 수가 없다. 몇 명의 3·15부정선거의 원흉들도 옥중
입후보를 했다. 자유당의 뭇 앞잡이들은 혹은 그 당의 이름을 걸고 또 어떤 이들은 무소속이란 이름으로 정체를 숨기고 출마를 했다. 혁명이란 말뿐이요, 언제 무슨일이 있었느냐는 듯하다.
  백성을 우롱함이 이에까지 이른다면 우리가 한 혁명은 아무런 가치를 나타내지 못할 것이요 어린 영( 靈 )들의 죽음은 완전한 개죽음이 아니겠는가.
  8·15 이후 미군정의 그늘 아래서 교묘하게 변을 면하고 영달의 길을 찾았던 그 많은 일제의 주구들은 이( 李 ) 정권의 뭇 앞잡이들과 더불어 오늘도 또다시 같은 수법을 가지고 과정( 過政 )의 그늘 밑에서 구명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고 그들이 부정으로 모은 돈으로 권력을 살 수만 있어 구명만 된다면 언제든지 내어던질 태세를 갖추고 이곳 저곳에 추파를 던지고 있어 정가에는 가지가지 추문이 돌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일제가 물러간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불의의 성장과 의의 쇠퇴만을 보아온 이 땅의 모든 행정지도층은 눈치만을 살펴가며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지 않고 과도기를 우물우물 넘겨보자는 심산에서 무위무능한 행정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과정( 過政 )에서 신념을 가진 강력한 정치가를 발견 못한 우리는 또다시 그래도 나라의 앞날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던 민주당에 대한 커다란 새로운 실망을 가진다. 새로운 정권을 맡겠노라고 자부하면서 그 정권이 오기도 전에 감투의 분배에만 혈안이 된 그 당은 그 정책이 어떠한 것임을 내어놓을 만큼 준비조차 없어 한심한 꼴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을 가지고 나라를 맡겠다는 말인가. 북한의 건설을 허위선전이라 하고 무력으로 간단하게 통일할 수 있다고 떠들던 이( 李 ) 정권의 실태가 오늘에도 재연되어 국력을 배양함에 앞서 내 집에 골동품을 하나라도 더 들여 화려를 자랑하고 자리를 다투어 분리 야합하여 가며 굶주린 이리떼 모양으로 먹을 것을 찾아 헤맬 것 같은 우둔하고 추잡한 교체정객들의 추( 醜 )를 눈앞에 선하게 볼 수 있다. 이것이 한낱 기우이기를 바라는 마음 절절하다.
  우리의 혁명은 아직 성공을 보지 못하였다. 혁명은 파괴다. 철저한 파괴다. 일부분은 파괴하고 일부분은 수선을 하여 다시 쓰는 것을 혁명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혁명은 급속한 건설의 뒷받침이 있어야 그 구실을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건설의 뒷받침을 할 수 있는 완전한 기틀이 짜여져 있지 않은 혁명은 걷잡을 수 없는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혁명후의 건설을 위한 준비, 그 준비를 갖춘 주체,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심요소인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모두 결한 것이 우리의 4월혁명이었다.
  혁명의 성공을 보기도 전에 주체가 물러섰으니 건설은 고사하고 철저한 파괴도 못하였음이 당연하다. 그러니 불의와 부패의 싹은 그대로 남아 꿈틀거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혁명의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도층을 앞세운 우리 사회인지라 혁명정신이 남아 움직일 수 없음은 당연하고 평온만을 즐겨하는 우리 민족성인지라 과정( 過政 )이 하는 일만을 살피며 그저 잘하여 줄 것만을 기원하고 있을 뿐이다.
  원래 우리 민족은 노예생활은 면하여본 일이 별로 없는 민족인 성싶다. 때로는 이족의 노예로 때로는 특권층의 노예로 거의 일관된 노예생활 속에서 신음하였으며 내 정부라고 세워진 이후 우리는 또다시 정치적인 노예가 되어버렸던 것이니 내 나라라고 하면서 나와는 무슨 관계에 놓여 있으며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국가권력은 어떠한 근거 밑에 움직여지며, 어떠한 계층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며, 어떠한 국가기관이 어떠한 법적 근거 밑에 임님을 강제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며, 이러한 모든 국가기관들은 어떻게 조직되어 한 개의 국가기구가 되었는가 하는 등 국가권력의 구조문제 같은 것은 생략할 여념조차도 없었다. 그러니 일개의 부락의 지서주임( 支署主任 )만 되어도 그 지방의 제왕이요, 자유당의 간부라면 인민의
생사여탈을 자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폭군으로 임하여 그저 이리 가라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고 여기에 도장을 찍으라면 그대로 찍고 이 사람에게 투표하라면 또 그대로 하고 그러면서도 만세만을 불러줄 수밖에 없던 것이 이 땅의 순박한 백성이었으니 그들이 백성을 깔보고 마음내키는 대로 장난쳐온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그러나 이제 확실히 우리 백성은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승만이 백 세 천 세를 살아가며 이땅에 군림하리라 믿었던 그에게 거역하면 천벌이라도 받을 것이라는 미신까지 붙어다니던 일도 자신이 우매하였으므로 지녔던 생각임을 깨닫게 되고 그 서릿발이 선 세도가들도 고랑을 세워놓고 공판정에 세우고 보니, 다 같이 하잘것없는 인간임이 드러나 이제 우리 백성은 확실히 국가권력의 소재처가 국민자신임을 알게 된 것이다.
  양심 있는 학도들은 다시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신생활운동〉의 기치를 들고, 물론 생활의 혁명이 없이 사회의 혁명이란 바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당연히 이 같은 운동을 조장하여야 한다. 또한 조장뿐만 아니라 참가하여야 한다. 이러한 운동이 무르익었을 때 진정한 혁명은 이 땅에 찾아올 것이다. 그 후에 올 혁명만이 진실로 이 나라를 살찌울 것이다.
  혁명은 바로 실패 직전에 놓여 있다. 이떄 정치인들의 각오는 더욱 견결하여야 한다. 혁명의 전위에는 못 섰을망정 그 정신만으로도 받들 수 있는 마음의 준비나 가지고 새로운 정권을 맡겠노라 하여주어야 할 것이다. 불의가 받을 당연한 응징을 국민 앞에 보여주어야 한다. 뒤에 오는 새로운 세대들 앞에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만이 앞으로 이 민족을 번영시키는 길이리라. 과정( 過政 )의 실정( 失政 )이 신정부에서 완전히 시정될 때만 새로운 민족의 활로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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