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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 보기   날짜 : 2013/08/19  조회수 : 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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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 한국인을 처음 본다는 그들, 참 스스럼없네['장준하의 구국장정육천리' 자전거 순례 ④]

▲  한국광복군훈련반이 있던 린취안제일중학교 앞에서

한국인을 처음 본다는 그들, 참 스스럼없네
['장준하의 구국장정육천리' 자전거 순례 ④] 쉬저우에서 린취안까지


지난 3월, 38년 만에 처음으로 장준하 선생 죽음의 원인에 대한 정부의 공식보도를 부정한 결과가 나왔음에도, 진흙탕 같은 정치 싸움으로 인해 들끓던 여론이 잠잠해졌다. 결자해지의 위치에 있는 대통령조차 일언반구 말이 없다. 진상규명은 물 건너간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는 50대 여섯 명이 나섰다. 장준하 선생이 중국 쉬저우(徐州)에 있던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간 그 길을 따라 자전거로 다녀오자는 데 뜻을 함께한 것이다. - 기자말

  
길은 어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평지다. 길 주변은 모두 밭이고 거의 논을 볼 수 없다. 장준하 일행이 몸을 숨기는 데 좋았던 옥수수가 많이 나 있다. 도로 양쪽으로는 플라타너스가 빼곡히 서 있다. 나무 사이사이로 가는 곳마다 군데군데 화학비료를 선전하는 화비(化肥)라는 입 간판이 밭에 서 있다.

이 넓은 들판에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유기농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화학비료를 장려하고 있다. 그 넓고 넓은 땅에 모두 화학비료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생산은 늘어나겠지만, 훗날 토질이 나빠지고 주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은 생각 못하는지. 나로서 걱정되는 것은 그 많은 화학성분이 결국은 황해로 배출되어 중국의 연안 어업은 몰락이 가속화되고 이웃한 우리나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선진 나라의 사례를 이미 모두 파악했을 텐데 중국 정부는 화학비료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자전거 두 대가 이어서 '펑크'가 났다. 정비를 맡은 임 선생이 바퀴 하나를 능숙하게 빼서 튜브를 교체한다. 보통 이삼십 분 걸리는 것을 그는 5분내에 수리했다. 역시 자전거세상만들기협동조합 대표답다. 그는 동아리 회원과 함께 자전거 주행할 때도 펑크가 나면 항상 나서서 수리해 준다고 한다. 봉사정신이 아주 몸에 배어 있다.

비는 어느덧 그쳤다. 장준하 일행도 궈양을 떠나 린취안(臨泉) 100리 전에 도착하자 사흘간이나 비가 내려 발이 묶였다. 우리는 비가 갠 후 린취안에 도착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예전 한국광복군훈련반이 있던 제일중학교이다. 물어물어 찾아가니 린취안제일중학교가 큰  길가에 있어서 뜻밖에 쉽게 찾았다. 우리가 도착하자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마치 장준하 일행을 보고 당시 한국광복군훈련반에 있던 많은 한국 청년들이 몰려오는 것처럼. 그들은 오랜만에 모국어로 환영해서 서로 뜻을 알 수 있었으나, 우리는 한국 사람들을 처음 본다며 말을 시키는 중국인들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 린취안에서 그들은 한국인을 처음 봤다는 것이다. 세상에! 중국에서 한국인을 처음 보는 도시가 있다니! 그만큼 이곳은 관광 도시가 아니기때문에 한국인이 올 일이 없는 곳이다. 린취안 외에도 산중에서 만난 많은 중국인들은 한국인을 처음 봤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난 대부분 중국인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무척 반겼다. 텔레비전에서 한국을 봤다고 했다. 한류의 덕을 우리가 톡톡히 보고 있다. 우리는 마치 민간외교관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장준하 일행, 중국군의 배려와 안내로 가던 길을 가다

츠카다 부대를 탈출한 장준하 일행은 중앙군 유격대에 편입하여 일본군 부대에 살포할 선전 전단을 만들며 유격대 사령부를 도왔다. 그러던 중 같은 중국인 공산당 군대인 팔로군의 습격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한치룡 사령관이 전사하자 장준하 일행은 가던 길을 갔다. 7월 28일 저녁 김영록, 윤경빈, 홍석훈, 김준엽 그리고 장준하는 사령부에서 붙여준 안내자를 따라 유격대를 떠났다.

나흘을 걸은 후 도달한 곳이 바로 톈진(天津)과 포구(浦口)를 연결하는 진포선 철도였다. 일본군이 중국을 점령했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점과 선의 점령이라는 것처럼 도시와 철도 주변만 점령한 것이다. 어떻게 그 넓은 땅 모두를 점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일본군들은 철도를 삼엄하게 지켰다. 장준하 일행은 일본군에 들키지 않고 철도를 건너가기 위해 사흘을 기다려 장이 서는 날 중국인 장꾼과 언어장애인(벙어리) 행세하며 분산해서 철도를 넘었다. 안내자는 일행을 장쑤지구 유격대 총사령관 이명양 장군 휘하의 한 사령부에 인계했다.

유격대 총사령관 이명양 사령부에 도착한 장준하 일행은 사령관이 하는 태도를 보며 부대의 인상이 매우 안 좋음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10여 명의 무장병이 안내했으나 전날과 달리 안내를 맡은 무장병들은 죄수들을 이송하듯 수시로 괴롭혔다. 그 사령관에 그 병사들이었다. 윗물이 썩었으니 아랫물이 안 썩을 리 있나? 닷새를 걸은 후 해주와 바오지(寶鷄)를 연결하는 용해선 철도를 앞두고 인계되었다.

여기서 다시 붙여준 한 청년의 안내로 야음을 틈타 밧줄을 이용해 철로 양옆에 놓여있는 두 개의 깊은 호를 무사히 건넜다. 고마움에 이름이라도 알고자 물었으나 청년은 '중국의 한 애국청년'으로 알아 달라며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떠났다. 다음날 다시 대여섯 명의 무장군인의 안내를 받았으나 이들도 행패가 무척 심했다. 그러나 새로 도착한 유격대 사령부에서는 장준하 일행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하얀 군복을 맞추어 주었을 뿐 아니라 용돈까지도 주었다. 이러한 사령관의 특별 훈시를 들은 무장 호송병들을 따라 불편함 없이 사흘을 걸은 후 궈양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장준하 일행은 가까운 린취안에 한국 청년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말을 듣는다.

스스럼없는 여학생의 안내로 호텔을 찾다

호텔을 찾으려고 하는데 주변에 있던 여학생 두 명이 안내를 자청한다. 고교졸업반으로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예비 대학생들이다. 그들은 지나가는 삼륜차를 불러 세우더니 우리보고 따라 오라고 한다. 10여 분쯤 달려가니 그럴싸한 호텔이 나왔다. 여장을 풀고 나오는데 그때까지 여학생들이 안 가고 식당까지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학생들은 너무 스스럼없이 말을 건다. 특히 같은 여자인 윤 원장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들의 친절이 고맙기도 해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다. 밤이 늦었는데도 함께 있는 것이 걱정돼서 물어보니 이미 집에 말해놨다고 한다.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외국인들을 처음 본다며 너무 좋아하는 순박한 아이들한테 흠뻑 빠졌다.

중국인들은 참으로 남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행동한다.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다. 공원에서 보면 여럿이 모여서 하기도 하지만 혼자서 무용도 하고 무술 수련도 하고 팽이도 친다. 심지어 노래도 하고 악기 연주도 하고 주절주절 연설하기도 한다. 오늘도 두 여학생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남을 많이 의식한다. 우리나라 중년의 남성에게 인기가 많은 색소폰은 소리가 매우 크다. 그래서인지 연습실이 없는 사람들은 별로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는 다리 밑에서 혼자 연습하곤 한다. 대체로 누가 옆에 있으면 쑥스러워한다. 하고 싶어도 누군가 있으면 주뼛주뼛 망설인다. 시켜야 마지못해 한다. 나서다 매우 혼난 사례가 많은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 이해가 가긴 한다. 나서지 않는 것이 나름 좋은 면도 있겠으나 중국인의 스스럼없이 나서는 면은 본받을 만하다.

거리계를 살펴보니 오늘 달린 거리는 자그마치 170킬로미터였다. 그러니 아침 6시에 출발했음에도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였다. 하루에 달리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그러나 일정에 맞추다 보니 어제 못다 한 거리가 더해져 이렇게 먼 거리를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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