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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 보기   날짜 : 2013/08/19  조회수 : 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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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 자전거순례 중 똑 부러진 핸들... 차라리 다행['장준하의 구국장정육천리' 자전거 순례⑤]
자전거순례 중 똑 부러진 핸들... 차라리 다행
['장준하의 구국장정육천리' 자전거 순례⑤] 린취안에서 난양까지


지난 3월, 38년 만에 처음으로 장준하 선생 죽음의 원인에 대한 정부의 공식보도를 부정한 결과가 나왔음에도, 진흙탕 같은 정치 싸움으로 인해 들끓던 여론이 잠잠해졌다. 결자해지의 위치에 있는 대통령조차 일언반구 말이 없다. 진상규명은 물 건너간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는 50대 여섯 명이 나섰다. 장준하 선생이 중국 쉬저우(徐州)에 있던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간 그 길을 따라 자전거로 다녀오자는 데 뜻을 함께한 것이다. - 기자말

호텔서 묵었지만 닭 울음소리에 일찍 잠에서 깼다. 닭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시끄럽다는 생각보다는 향수에 젖게 된다.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 위해 호텔 주차장으로 갔다. 어제는 해가 떨어진 다음 호텔에 도착해서 잘 못봤지만 자전거가 아주 엉망이었다. 어제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를 빗속에서 달렸기 때문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가까이에 수도가 있었다. 출발을 잠시 미루고 세차부터 해야 했다. 호텔 관계자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고맙게도 호스를 가져다줬다. 내 것 네 것 할 것 없이 함께 여섯 대의 자전거를 깨끗이 청소하고, 기름칠도 다시 했다. 그러고 나니 출발이 너무 늦어졌다. 갈 길은 먼데 늦게 도착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중국군 장교로 임관한 장준하

린취안에 도착한 장준하 일행은 중국군 중앙군관학교 린취안분교 간부훈련반에 소속된 한국광복군훈련반(이하 한광반)에 입소한다. 한광반은 일본군에 징병돼 중국으로 오는 조선 청년들의 수가 많아진다는 정보에 따라 이들의 탈출을 염두에 두고 장준하 일행이 도착하기 4개월 전에 설치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 총사령부의 명을 받은 김학규가 정식으로 린취안분교에 한국 청년들의 군사훈련을 요청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었다.

김학규는 1900년생으로 평안남도 평원 출신이다. 1919년 만주의 유하현에 있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1928년에는 조선혁명군을 조직했고, 1932년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 중국의용군과 연합해 일본 관동군을 무찔렀다. 일제가 만주를 본격적으로 침략하자 중국 안으로 이동, 난징에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에 참가했다. 이후 1935년 민족혁명당으로 통합한 후 중앙간부로 활동했다.

1939년 쓰촨성 지장에서 한국독립당을 만들었으며 다음 해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부 참모가 됐다. 1940년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임명됐고, 1943년 안후이성 푸양(阜陽)에서 활동하면서 1944년 중국군 제10전구 사령관과 교섭해 린취안에 한광반을 특별히 개설, 탈출한 학병을 수용해 광복군 간부훈련을 전개했다. 1945년에는 광복군 제2∙3지대에 대한 한미합작특수훈련을 계획했다.

말이 훈련반이지 조선인 훈련반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군사교육을 받지 못했다. 중국인 학생들은 직접 총을 쏘면서 사격훈련도 하지만, 조선인들에게는 목총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정신교육도 오래가지 못해 많은 시간을 하릴없이 보내야 했다. 그러자 장준하 일행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훈련반 학생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열었고 잡지 <등불>을 발간했다.

제공되는 급식이 충분하지도 않음에도 취사를 맡은 이들이 성실치 못하게 음식을 주자 불만이 생기게 됐다. 이때 장준하는 새로운 취사 책임자로 뽑혔다. 그가 아무리 성실하게 급식을 준비한다 해도 제공되는 그 양이 충분하지 못해 늘 배를 곯았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양심의 가책은 받았지만, 동지들을 위해 20여 일간이나 근처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서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화도 전해진다. 두 명의 동지가 술집을 돌아다니며 일본도로 중국인들을 협박해 술을 강탈해 마시고, 그것도 모자라 술집의 개들까지 죽이고 린취안 시내를 마구 돌아다녔다. 그나마 조용히 들어왔으면 모를까, 영내로 들어와서도 칼을 휘두르며 행패를 부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이 영창에 갇히자 취사 책임자로 장준하는 갇힌 그들에게도 사식을 넣어줬다. 그러다 중국의 육군형무소로 그들을 이감한다는 말을 듣고는 정열을 다해 동지들을 설득한 뒤 중국 당국에 협조를 구해 두 사람을 풀려나게 했다. 육군형무소에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난 그들은 해방 후 국군 장교로 큰 공적을 남겼다고 한다.

훈련반 졸업을 앞두고 학교의 요구로 중국인 학생들과는 달리 한광반은 연예 행사를 하게 됐다. 이중 장준하는 반일 연극 <광명지로>를 직접 연출해 큰 호응을 얻었다. 훈련반 과정은 원래 4개월이었으나 장준하 일행은 한 달 모자란 3개월간 교육을 받고 11월에 한광반을 졸업, 공식적으로 중국군 육군 소위로 임명됐다. 중국군 장교가 된 덕에 그들은 충칭까지 가는 길에 중국 인민과 군의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들은 졸업 후 충칭 임시정부를 향해 다시 떠나려 했으나 김학규가 충칭의 임시정부 사정을 설명하며 적극 말렸다. 결국 13명만 남고 나머지 50여 명은 충칭을 향해 길을 떠나게 된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핸들바가 부러지다니

길은 어제처럼 일직선으로 곧게 나 있다. 굽지 않고 곧게 난 그 거리가 10킬로미터나 됐다. 도로는 청소한 듯 말끔했다. 뒤따라오던 임 교수가 갑자기 나와 강하게 추돌했다. 잠깐 쉬자는 말에 내가 속도를 줄이자 그만 부딪친 것이다. 흔히 있는 사고다. 그는 꽤 아팠는지 배를 움켜쥔다. 나중에 보니 배에 일(一)자 모양의 멍이 들었다. 함께 넘어졌지만 다행히 자전거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잠시 쉬고 다시 주행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멈추라고 한다. 멈춰 보니 임 교수 자전거의 핸들바가 두 토막이 났다. 평지에서 주행하고 있는 중 갑자기 부러졌다는 것이다. 사태를 파악해 보니 조금 전 부딪쳤을 때 임 교수가 넘어지면서 임 교수의 배가 핸들바에 강하게 부딪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핸들바가 부러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난감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아니, 어떻게 그 중요한 핸들바를 이렇게 불량으로 만들 수가 있나? 그만한 충격에 핸들바가 부러지다니! 도무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일반적인 자전거도 핸들바가 부러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물며 전문적인 산악자전거 핸들바인데, 그게 부러지다니.

이 상태로는 갈 수가 없다. 그나마 평지이니까 한쪽만 잡고 버틸 수는 있었다. 주마덴(駐馬店)까지는 먼 거리를 달려야 한다. 할 수 없이 불편한 상태로 가다가 길가에 철물상 비슷한 게 보여 그곳에서 관을 얻어 응급조치를 했다. 응급조치를 한 관도 정확하게 핸들바에 맞지 않아 갖고 있던 붕대로 둘둘 말았다.

평지에서 부러졌으니 천만다행

우리가 갖고 간 자전거 중 네 대는 국내 회사 제품으로 프레임은 모두 티타늄이다. 세 대는 거의 모든 부품이 다 티타늄 제품이었지만, 임 교수의 자전거는 한 등급 아래인 것으로 핸들바와 스템 그리고 안장대 등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몇 년 전에 일본산 자전거의 프레임 이음새가 부러져 자전거를 타던 사람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이 사건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큰 반향을 보였다. 그 회사는 그에 대한 책임을 졌지만 결국 시장에 흔했던 그 회사 제품은 더 이상 보기 힘들었다. 핸들바가 부러진 것은 이 사건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핸들바가 부러진 것에 대한 분노도 잠시, 우리는 다시 생각했다. 어차피 이상이 있었던 그 핸들바가 평지를 달리던 이 시점에 부러진 것은 천만다행 아닌가? 만일 내리막에서 부러졌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앞으로 이삼일 후면 산악지대를 접하게 되고 그러면 내리막을 달리게 된다. 이때 부러졌다면? 위로도 잠시, 우리는 핸들바가 부러진 게 되레 다행이라고 축하했다.

길가 양쪽에는 건설 중인 집들이 많았다. 그런데 하나 같이 모두 붉은 벽돌집이었다. 그 모양도 직육면체. 솔직히 멋이 없었다. 처음부터 도착할 때까지 거의 모든 집 모양이 그랬다.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는 하나도 없고 끝도 없이 펼쳐진 평원을 달려 오후 7시가 돼서야 허난성(河南省)의 주마덴에 도착했다. 오늘의 주행거리는 약 150킬로미터. 적지 않은 거리였다. 임 교수는 자전거 때문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도착해 자전거를 수리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다음 날을 기약하며 피곤한 하루의 몸을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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