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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 장준하 선생이 이 고생했다 생각하니 눈물이...[<장준하의 구국장정육천리> 자전거 순례⑩]

▲  바둥항에서 12일에 걸친 자전거 순례를 마치다. 가운데가 필자다.

장준하 선생이 이 고생했다 생각하니 눈물이...
[<장준하의 구국장정육천리> 자전거 순례⑩] 라오허커우에서 바둥까지

7월 3일 오전 7시에 싱산을 출발했다. 장준하 일행의 행적을 따르면 우리는 여기서 자전거 주행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바둥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여비가 떨어진 또 다른 일행은 산을 넘어 바둥으로 걸어갔기에, 우리는 그들을 생각하며 산을 넘기로 결정했다. '참, 그들은 왜 돈을 그렇게 낭비해서 우리를 또 고생시키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싱산과 바둥 사이는 100여 킬로미터 정도되겠지만, 산이 높고 하루 일정이 남아 원래 계획과 달리 중간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호텔서 바둥으로 가는 길. 처음에 강을 따라간다. 이 강을 따라 장준하 일행은 배를 타고 갔을 것이다. 전날 그렇게도 많이 산을 내려오고도 아직 덜 내려왔는지 길은 계속 내리막이다. 어디까지 내려갈 건지 걱정되게 만든다. 주변의 산은 매우 높은 데 내려간다는 것은 그만큼 올라갈 길이 더 높이진다는 뜻.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좋은 날이 너무 오래되면 불행이 올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강을 어느 정도 따라가니 다리를 건너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제 우리는 강이 아닌 산으로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곧이어 터널이 나온다. 호텔을 출발한 지 17km 만에, 전체 일정 중 본 단 하나의 터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곳곳에 터널이 뚫려있을 텐데 첩첩산중에도 터널은 단 하나뿐이었다. 해발 고도를 보니 200미터 정도 된다. 이곳을 출발해 우리는 해발 고도 1800미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곳으로 가는 길

장준하 일행은 라오허커우를 떠난 지 9일 만에 바둥으로 내려가는 내리막 길에 들어섰고 그로부터 나흘 뒤 양쯔강의 한 지류가 흐르는 평지에 도착했다. 그곳이 바로 싱산이다. 매일 30~40킬로미터를 걸어 2주일이나 걸린 길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그들은 파촉령을 넘었다고는 하나 우리는 파촉령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직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었다. 인근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파촉령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근처에 선능자산림구역(神農架林區)이 있다고 한다. 대단한 관광지인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해발 3100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아마도 장준하 일행은 이 지역을 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충칭으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항구인 바둥까지는 당시에 싱산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배를 타면 하루 거리요 걸어가면 이틀이나 걸린다고 했다. 장준하를 포함한 일부는 배를 타고 갔으나 여비가 얼마 남지 않은 일부는 걸어가야 했다. 똑같이 여비를 나눴는데 누구는 많이 남아있고, 누구는 모자랐던 것이다. 1945년 1월 20일, 장준하 일행은 배를 타고 가 한밤 중에 바둥에 도착했다. 여기서 그들은 사흘을 머물고, 그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으로 떠났다.

물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떨어지고

이전과 달리 35킬로미터나 올라왔는데도 그 사이 슈퍼가 하나도 없다. 아마 산중이라 마을이 많지 않아 그런 것 같다. 물은 떨어지고 먹을 것도 떨어졌다. 갈증을 느꼈으나 옆에 흐르는 계곡 물을 마시진 못하고, 입만 헹궜다. 배도 엄청 고팠다. 잘못하면 쓰러질 것 같았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산악 자전거에 아주 빠져 살던 몇 년 전, 대전 계족산을 도는 산악 자전거 대회에 출전했다. 늘 다니던 곳이라 방심하고, 아침도 부실하게 먹은 채 대회에 참가했다. 한참을 산을 타고 다녔는데 갑자기 속도가 나지 않는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계속 나를 앞질러 갔다. 이상하다 했는데 갑자기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다. 길가 옆에 자전거를 뉘여 놓고 앉아 등산객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한 사람이 내려오자 체면 불구하고 '먹을 것 좀 있으면 달라'고 했다. 고맙게도 그는 감을 서너 개 꺼내줬다. 정신없이 감을 모두 먹고 나니 비로소 힘이 생겼다. 그 덕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결승점까지 갈 수 있었다. 물론 기록은 형편 없었지만…. 그 이후로는 미리 먹을 것을 챙겨 먹고 간식을 갖고 다녔다. 그런데 오늘 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40여 킬로미터 가까이 올라가니 비로소 정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힘이 모두 빠져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조금 내려가니 마침 길가에 있는 집에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쉬는 김에 물 좀 얻어먹을까 했더니 더운 물을 준다. 그들이 차를 마시려고 끓여놓은 물이다. 그나마 더운 물을 마시고 갈증을 조금 해소한다.

10여 킬로미터를 더 내려 달리니 조그만 마을이 나왔다. 까오치아오(高橋)라는 곳이다. 일단 점심을 먹고 이곳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식당 주인이 알려주는 여관을 찾아가니 여긴 방만 있고 에어콘이 없다. 게다가 화장실도 없다. 그나마 화장실이라도 있었으면 그런대로 묵으려 했겠지만, 이건 아니었다.

다시 알아보니 오던 곳을 조그만 되돌아가면 한 여관이 있다고 한다. 되돌아 가보니 1층은 식당이고 2층과 3층은 객실인 여관이 있었다. 문제는 전기가 안 들어온다는 점. 같은 마을인데 점심을 먹은 아랫동네는 전기가 들어오고 이곳 윗동네는 전기가 안 들어왔다.  일전에 내린 폭우에 나무가 쓰러져 전깃줄을 건드렸단다. 그러나 저녁에는 들어올 거라고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온다. 대낮인데도 모기가 여기저기 있다. 대체로 아직까지는 모기가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모기가 소리도 내지 않고 문다. 이곳처럼 모기에 많이 물린 적이 없다. 잠을 설친 것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간지럽다. 마을에는 개천이 흐르고 주위는 온통 논밭이다.

순례의 종착지 바둥항에 도착하다

7월 4일, 주행 마지막 날. 충칭에서 임시정부 청사까지 일부 시내 주행이 남아 있지만 얼마 안 될 것이고 이번 주행이 이번 순례의 마지막 긴 주행이다. 우선 안전을 기원했다. 지금까지 모두 안전하게 온 것에 감사하고 남은 50여 킬로미터 더욱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

어제 내려온 10여 킬로미터를 다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10여 킬로미터를 올라갔다.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이다. 양쯔강이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을 내려와 강에 다다르니 다시 오른쪽으로 강을 마주하며 한참 올라간다. 이것이 이번 자전거 순례의 마지막 오르막이다. 집들이 나타나고, 내려가니 비로소 바둥이 나타났다.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항구로 향했다. 이곳에서 장준하 일행은 군함을 탔다. 바둥은 양쯔강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도시가 나뉘었다. 양쪽 모두 산세가 험했다. 그런 곳에 도시를 세우고 높은 빌딩을 지었다. 자전거는 다닐 수 없는 그런 도시였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에 항구가 있었는데 새롭게 공사 중이었다. 예전에도 이곳에서 출발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배가 들고 나는 곳이라 이곳을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지금까지 12일에 걸쳐 1100여 킬로미터를 달렸다. 장준하 일행이 일편단심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이 먼 거리를 추위 속에서 걸으며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호텔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입실할 수 있으려나 했더니 마침 청소를 마친 방들이 있어 가능하다고 한다. 호텔은 참 깨끗했다. 그런데 호텔 방이 프론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있다. 앞에서 보면 지하라는 말이다. 객실서 바라보니 바로 앞은 아파트이다. 주상복합형 아파트에 지하 2개 층을 호텔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원체 산의 경사가 심하니 이런 호텔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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