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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Date : 2021/08/05  Hit : 462  
 [광화문에서] 독선과 고고(孤高)

독선과 고고(孤高)

일찍이 ‘학문을 위한 학문’ 또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말이 유행하여 그 순수 고고성(孤高性)을 고창(高唱)한 일이 있습니다. 세태가 안정되고 평화가 무르익는 때에는 이러한 견해가 용인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균형된 평면에서 각기 제자리를 차지하고 자기영역 안에서 발전하는 한, 그것은 총체적인 향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때 자유방임주의가 경제를 촉진한 것과 다름없는 이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구래의 세계관이 뒤흔들리고 새로운 세계의 모색에 전 인류가 총동원된 사태하에서는 이 같은 입장이나 태도는 독선 내지 도피에 지나지 않고 비겁무쌍한 처사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멀리 구할 것도 없이 당장 우리나라가 지금 미증유의 국난에 처해서 수백만 젊은이들이 피를 토하면서 생명을 내던졌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불구의 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모든 힘을 다하여 그 뒷받침에 헌신하고 있는 것도 요컨대 우리가 주야로 머릿속에 그리는 세계상을 실현하여 진정한 민주주의사회를 이룩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사회를 이룩한다 하여도 구체적인 면에 들어가서는 각자가 품고 있는 그 사회상이나 이것을 이룩하는 방편에 있어서는 각인각색(各人各色)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이같이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요, 결코 비관할 것은 못 됩니다.

그러기에 항용 민주정치는 타협의 정치요 민주사회는 타협의 사회라고 합니다. 이 사회는 자기만이 사는 사회가 아니요, 만인의 사회인 동시에 나에게 주장이 있음과 마찬가지로 너와 그에게도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분위기 속에서 서로 의견을 토론하고 교환하여 타협점을 발견하고 그 타협된 결과를 실천하는 것이 민주주의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당에서 나만 잘났고 나의 주장만이 가장 옳다고 뻣대는 정치인의 타(他)를 불고(不顧)하는 태도는 무엇보다도 지탄을 받아야 하겠지마는, 이에 못지않게 규탄을 받아야 할 것은 독선과 고고를 내세우는 지식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혼란을 극하여 명일을 예측할 수 없는 아시아의 현 단계에서 지식인의 임무는 지진 측정계와 같은 역할에 있다’고 혹자는 갈파하였지마는 이 같은 임무를 저버리고 일신의 보전에 급급하여 비겁한 침묵을 지킨다든가 성심과 성의로써 사회의 광정(匡正), 향상에 이바지하려는 다른 지식인의 활동을 백안시함으로써 순수고결을 가장하는 따위의 학자 내지 문화인은 긴박한 우리 사회에서는 무용지장물(無用之長物)이요, 나아가서는 남의 노력에 기식(寄食)하는 해충에 불과한 것입니다.

긴박의 도가 우리나라보다 덜한 서구와 미주(美洲)의 일류학자, 문화인들이 선두에 서서 백성의 지향할 바 정부의 갈 길을 외치고 있는 현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대조라고 하겠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심심한 반성과 실천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권두언(195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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