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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Date : 2021/08/19  Hit : 514  
 [광화문에서] 새 세대를 아끼자
새 세대를 아끼자

우리는 흔히 도의의 퇴폐를 개탄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중에서도 새로운 세대를 향하여 예의동방에 독진(獨秦)의 무례를 탓하는 낡은 세대의 탄성이 가장 많은 듯합니다. 우리는 결코 이 사실을 부인하려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용히 생각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는 줄로 압니다.

오늘은 어저께의 연속이요 내일은 오늘의 연장인 것과 마찬가지로 새 세대의 윤리나 기풍이 그 세대와 더불어 독자적으로 일시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전(前) 세대에서 물려받은 것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낡은 세대는 과연 무엇을 새 세대에게 물려주었기에 자라나는 젊은 싹을 놓고 그 장(長)을 보기 전에 우선 단(短)을 들춰내기에 급한가? 생각이 이에 이르면 암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찍이 그들에게 따듯한 환경을 마련하여 당연한 발전을 이룩할 기회조차 제공한 일이 없고 해박한 학식과 숭고한 인격으로 그들에게 지향할 바를 비쳐 준 일도 없는 반면에 외구(外寇)의 사슬에 허덕이던 당년(當年)에는 비굴과 아첨과 배반의 실례를 가는 곳마다 퍼뜨렸고 민족의 자유를 찾은 뒤에는 이 자유를 악용하여 모리(謀利), 협잡, 모략, 중상, 암투를 일삼아 민족의 명맥과 국가의 운명을 위지(危地)로 몰아넣는 광경을 눈앞에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기름진 땅에서는 기름진 곡식이 나되 메마른 땅에서는 메마른 곡식 밖에 날 것이 없음은 대자연의 철칙입니다. 젊은 싹이 자라날 터전의 기름을 빼고 그 공기를 흐려놓고도 오히려 기름지기를 원하고 악을 베풀고도 감은(感恩)을 요구하고 추(醜)를 보이고도 찬앙(讚仰)을 강요하는 괴현상이 지금 이 땅에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새 세대는 과연 메마르고 예(禮)를 못 가리고 속이 비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잘못을 책하기 전에 우선 그 잘못의 근원이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옛날 현철(賢哲)은 백성의 괴로움을 보고 나 자신의 혹심한 도독(筡毒)같이 느꼈다고 합니다.

하물며 나로 해서 메마르고 옳지 못한 백성이 있거든 어찌 앉아서 이를 탓함만으로 일삼을 수 있겠습니까? 나라의 힘이 젊음에 있고 희망이 청소년에게 있을진대 이 같은 태도는 결코 옳은 이들이 취할 바가 아니라 하겠습니다.

우리의 새 세대는 비록 메마른 터전, 혼탁한 공기 속에서 자랐다 할지라도 청춘을 바치고 목숨을 던져 적을 물리치고 깜빡이던 자유의 명운(命運)을 건지었습니다. 이 산과 이 뜰, 바다와 하늘, 도시와 농촌, 어디나 그들의 피흘린 자욱이 역력하고 그 영혼은 지금도 살아서 국가 민족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이 시각에도 혹은 태산준령에서 혹은 광막한 바다에서 모든 고난을 무릅쓰고 나라의 방패가 되어 있는 것도 그들이요, 학창(學窓)에서 이 땅과 이 겨레의 현재와 장래를 그리며 사라진 이상의 등불을 찾는 것도 그들이요, 도비(都鄙)를 막론하고 진실로 무사위공(無私爲公)의 정성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정의를 위해서는 수화(水火)를 가리지 않는 이들도 그들입니다.

젊은 세대는 나라의 기둥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잘못을 꾸짖기 전에 우선 나를 꾸짖는 충정이 있어야 하겠고, 그들의 그릇됨을 벌하기 전에 이를 시정하여 주는 친절이 있어야 하겠고,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피어날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본지 창간 3주년을 맞으면서 몇 마디 감회를 적는 바입니다.

장준하
권두언(195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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