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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Date : 2021/06/17  Hit : 531  
 [광화문에서] 생활과 정치

생활과 정치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고인의 말은 실로 인생을 바로 갈파한 바라 보여진다. 맹자는 “백성이란 떳떳한 살림이 있으면 떳떳한 마음이 있는 것이요, 떳떳한 살림이 없으면 떳떳한 마음이 없는 것이니, 떳떳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간사하고 사치하는 등 하지 못할 것이 없다”라 하여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 의식주의 안정 없이 다른 아무것도 바랄 수 없음을 말하였다. 그리고 또한 곡물, 어패, 재목 등 생활필수품을 충족시켜 부모처자를 양육하고 죽은 이를 위한 장제(葬祭)의 예를 다하여 유감이 없도록 함이 인간생활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결이요, 인의왕도(仁義王道)의 정치는 이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백성은 포식(飽食), 난의(煖衣)의 안일한 생활 위에 아무런 가르침이 없다면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효제(孝悌)를 논리적으로 가르쳐 백성으로 하여금 그 본성으로써 효제의 덕을 체득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같이 “백성으로 생활에 안정을 주고 그 위에 교육을 다하게 되면 안으로는 효(孝)하고, 밖으로 나아가면 제(悌)하여 스스로 사회의 질서가 서고 예법이 확립되어 평화스러운 세계가 출현될 것이다”라 하여 민생의 안정과 교육의 보급으로써 백성이 그 사람된 자각을 가지게 될 때이면 인도(仁道)는 스스로 나타나며 의(義)의 행위가 실현되어 상호부조하는 이상사회가 실현된다고 한 바, 금일에 있어서도 부의 균점에 의한 민생의 안정과 교육의 철저한 보급을 주안으로 하는 정치 이외에 국가의 발전을 기할 길이 없을 것이다.

정치에 대한 생각은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본다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정치는 천의(天義), 신의(神意)를 받들어 목민(牧民)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고, 정치를 이상국(理想國)‒지선(至善)‒의 실현과정이라고 본 이들도 있으며, 또는 국가목적의 실현 행동이라고 한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사회적·계급적 실력에 의한 지배의 행동이라고도 보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공동사회의 사무 수행의 수단, 또 어떤 이들은 가치실현‒문화가치, 인격가치‒의 과정,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사회의 역사적 발전과정의 현현(顯現)이라고 하는 등이다.

상술(上述)한 여러 가지 생각을 상세히 검토하여 본다면 그 어떠한 생각에서나 민생을 안정시켜야 하겠다는 일관된 생각은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빙자하면서도 혹자는 정치에 있어서 종교나 윤리적인 면을 강조하며 신적인 권위 가지고 임하여 모든 백성은 마땅히 자기를 섬겨야 하고, 자기는 당연히 영광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의리관계를 결부시켜 이에서 벗어나는 이는 역적으로 몰아세운 것이며, 어떤 이들은 국가나 민족이란 권위의 탈을 지상(至上)의 것으로 신봉시켜 자가의 희구를 국가의 목적으로 가장하여 민생을 마음대로 유린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계급적 지배를 강조 선동하여 인류사회에 대립과 투쟁과 살육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대개 정치에 있어서는 인간의 생리와 심리를 시간과 공간 속에 가장 잘 조화 조절시키는 것만을 가장 바른 길이라 하겠다. 민족의 자주도 좋고 국가의 독립도 좋으나 자기의 생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불안과 궁핍이 심하게 된다면, 안심하고 살 수 있었던 이민족의 지배시대를 그리워하게 되는 현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부에 의하여 애국심이 강요되고 도의심 발양이 강조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나날이 고등(高騰)하는 세액과 정비례로 공무원들의 취기(醉氣)와 유흥은 더욱 깊어가고 헐벗고 굶주린 농민과 노변의 걸인 수의 격증을 따라 특권층의 사치와 비대가 우심(尤甚)하여지며, 그래도 생산을 하여본다고 허덕이는 기업체들은 불로이득(不勞而得)하려는 권력 가진 불량배들의 등쌀에 문이 닫히고, 다방 연기 속 취기 몽롱한 중에 점치고 앉아 세월을 보내는 협잡배들만 살찌고 늘어만 간다면, 또한 우리는 자동차로 다니니까, 우리 집엔 특선전등이 들어와 있으니까, 우리는 차로 물을 길어다 먹으니까 모른다는 듯이 공중을 위한 아무런 시설의 착상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이것이 과연 바른 정치가 가져오는 행정일까, 이렇게 되고 보면 대외적인 능숙한 외교와 객관적 제 조건에 결부된 조치가 제아무리 잘 진행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는 공중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중국 농촌의 어떤 늙은이의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국민군이 오든, 공산군이 오든, 일본군이 오든, 또 다른 토비(土匪)가 오든 상관이 없다.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이 없고 다 도둑놈들이니까. 그저 아무것도 아니 왔으면 좋겠다.
이것은 중국 국민이 여러 군벌, 토비, 이족(異族)에게 착취되고 억압당하고 슬픔을 받은 나머지에 발하는 탄성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성은 안심하고 잘 살 수 있도록 하여주는 자를 좋아할 따름이다. 민주정치제(民主政治制)란 국민 각자가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안심하고 그 가진 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되어진 제도를 이름일 것이다. 여기에는 황제도 없고 귀족도 없으며, 주인도 없고 노예도 없다. 따라서 어떠한 종류의 특권층도 용허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오직 각자의 직분이 있고, 그 직분을 다하여 사회적 가치를 생산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각자의 책임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떠한 직분이든지 귀천이 있을 수 없고, 어떠한 사람도 남의 직분을 침해하지 못한다. 이같이 국민 각자가 자기의 능력을 다하여 맡은 직분을 완전히 감동하여 나아가며, 이것이 조화를 이루어 자연적으로 통일을 보게 되는 것이니 여기에 민생이 안정되고 참된 평화가 시작할 것이며 생활과 정치의 기초가 이에 있는 것이다.

사상계 권두언(195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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