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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Date : 2021/07/15  Hit : 477  
 [광화문에서] 문학의 바른 위치를 위하여
문학의 바른 위치를 위하여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그리는 것을 역사라고 하면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있을 수 있었던 일’과 ‘있을 수 있는 일’까지를 그리는 것이 문학일 것입니다. 그리고 문학은 그 출발점을 나날이 부닥치는 인간적 생활경험에 두고 이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에서는 인간감정, 정신 그리고 그 논리와 기반이 되어 있는 ‘사상’이 작가의 참신하고 예리한 추리와 감각으로 분석되고 이해되고 비판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와 인종을 초월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시편(詩篇)이나 아가(雅歌)를 경건한 마음으로 대합니다.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나 괴테의 작품에 머리를 숙입니다. 「춘향전」을 즐깁니다. 여기에는 조작이 아닌 그 시대와 그 문화를 배경으로 한 참된 인간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며 인간이 있을 자리에 인간을 놓고 신이 있을 자리에 신을 놓았으며 이로써 인류문화에 안정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그 시대의 문화를 근간으로 삼고 거기에 핀 꽃이며 잎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꽃이나 잎새는 그 나무나 풀의 생명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배꽃은 배나무를 위하여 있고 살구꽃은 살구나무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꽃도 있고 살구꽃도 있고 또 다른 나무와 풀이 있어 저마나 그 참된 아름다움을 나타낼 때 자연은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이와 한가지로 우리 민족의 아름다움은 우리 민족이 특이한 아름다움을 가졌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모방이나 추종을 잘하여서 생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독특한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이 세계에 내놓을 때 인류세계는 그만큼 더 아름다워질 것이며 우리의 존재가치도 인정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한 것은 우리 민족이 더욱 발전하고 향상하여 그 아름다운 향기를 만방에 떨치기 위함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문학의 두 가지 기형아를 봅니다. 그 하나는 ‘배나무에 배꽃이 피지 못하고 사쿠라꽃이나 달리아꽃이 핀 것’이며 또 하나는 ‘꽃에 나무 혹은 풀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방 이전에 자기반성을 가져야 하며 추종 이전에 위치의 정제(整齊)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문학은 우리 민족의 유산을 근간으로 한 작품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민족문화를 탐구하는 정열과 이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총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대적 인류적 호흡과 그 성찰이 아울러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이면서 또한 인류의 일원이며 인류사를 엮어 나아가야 하는 사람인 까닭입니다. 우리는 들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긴 머리채를 늘이고 시꺼먼 손톱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청춘남녀가 어두컴컴한 지하실 주석에서 통음난무(痛飮亂舞)하고 비분강개하며 외치는 전후 불란서문단 일부의 행진곡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연기 자욱한 다방 구석에서 정신병자 모양으로 천장만 바라보는 작가와 현대문학의 진수라고 교설을 늘어놓는 일부 인사들을. 이들은 확실히 사이비문학에 사로잡힌 노예가 아니면 환자로밖에 보여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학에서 해방되어야 하겠습니다. 전민족의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그려진 진실한 작품이 나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작품이야말로 민족을 복되게 하고 인류의 문제를 풀어 줄 것입니다. 인류의 복지를 지향하는 작품은 만고에 빛날 것입니다.

장준하
사상계 권두언(195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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