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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Date : 2021/07/20  Hit : 516  
 [광화문에서] 현대화의 거점
현대화의 거점

기계화 산업을 현대화의 출발로 본다면 근대 과학사상은 그 모태가 될 것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모든 학문과 사상과 제도를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분석하고 정리하고 체계를 세우고 이 체계 밑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이 체계를 따라 정책을 세우고 사회조직을 바꾸어 인류사회의 복리를 증진시켜 보려고 하는 것이 근대 이래로 열화같이 일어난 인간의 노력이었습니다.

대개 과학이라 하면 사물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고 체계화, 조직화하는 학문을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불합리한 억설이나 불명확한 입증이나 불분명한 조직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과학에서는 어디까지나 합리적 방법, 명확한 판단, 빈틈없는 조직, 이것만이 그 가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양의 현대문물에 의거하여 모방문화로 모방사회를 이루어보았습니다. 고층 건물도 지었고 고급 승용차도 이용하고 민주방식의 법률도 제정하였으며 서양식 사교도 하여 보았으며 세계열강이 가진 현대식 무장도 갖추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고층건물에 필요한 부시설(副施設)은 거의 돌보아지지 않으며 고급차가 달릴 수 있는 가도의 준비는 거의 없고 민주법률을 운용하는 고급공무원들은 봉건 귀족화되어가며 준법의 의무를 가진 자는 서민층에 불과하고 국민 각자의 마음은 자기 이익에만 기울어지고 있는 현상을 봅니다. 이것을 가지고 현대국가로 자처한다면 이에서 더 큰 잘못은 없을 것입니다.

이같이 근본을 세우지 못하고 표면만을 꾸며놓은 사회이니 혼란이 오고 모순이 거듭되고 부정이 연발하며 백성의 궁상(窮狀)은 구태의연하고 권력층의 행패가 일증(日增)하는 현상을 면키 어려운 것입니다. 개인의 장삿속을 위하여 정책을 세울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의 이해를 위하여 국가의 정책을 변경할 수도 있는 처사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허공에 뜬 조직, 과학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 정책, 모방에 의한 제도만으로 현대국가를 이룩하고 현대사에 공헌하겠다고 하는 생각이 있다면 이에서 더 큰 망상도 없을 것입니다.

현대화라는 것은 과학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모순됨이 없는 합리 합당한 법칙을 발견하고 그 법칙을 어긋남이 없이 지키고 그 법칙에 모순이 생길 때에는 또한 가장 합리적이고 명확한 방법으로 연구하고 정리하여 나아갈 수 있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며 확연한 기초가 서야 할 것이며 우리 민족이 지닌 역사와 문화는 우리 민족 발전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우리 민족의 문화가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정리되고 체계화되어 이것이 우리 민족의 현대화의 거점이 되어야 합니다. 『사상계 』지가 만 25년간이란 우리나라 잡지역사로서는 그리 짧지도 않은 기간을 갖은 한난(恨難)을 물리치고 걸어옴도 우리 민족의 현대화를 위한 과학적인 거점을 발견하고 이 기초를 튼튼히 하자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상계』 두 돌을 맞이하면서.
장준하
권두언(195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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