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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하 구국장정 6천리 설명회 성공적으로 열려

# 이모저모

# 장준하 선생님의 젊음과 열정을 배우고 싶다. 제6기 장정 대원 참가 동기서 한결같이 언급

# 참가자 명단

 

 

# 장준하 구국장정 6천리 설명회 성공적으로 열려

장정설명회 사회를 맡은 4기 한현우 등불이 6기 장정대원들을 소개하고 있다.제6차 아, 장준하 구국장정 6천리 설명회가 지난 12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설명회에는 김호준(前 문화일보 편집국장, 상무이사) 단장 등 6기 장정 참가자와 이부영 국회의원, 서상섭 국회의원, 김도현 디지털 사상계 대표, 유광언 장준하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설명회는 1999년 여름에 있었던 1차 장정 비디오 관람에 이어 이부영 의원 등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의 격려사, 각 기수별 청년등불과 6기 장정단 소개, 장정 주의 사항 안내, 독립군가 배우기 등의 순서로 개최됐다.

이부영 의원은 "월드컵과 양대 선거가 있는 올해는 대한민국에게 21세기 뉴밀레니엄의 실질적인 첫 해라고 할 수 있다"며 "연초에 장준하 선생 등 여러 선열의 족적을 뒤따라 가는 여러분들의 발길에 더욱 큰 뜻이 있다"고 격려했다.

김호준 장정단장은 "장정을 앞두고 '돌베게'를 다시 읽으며 장준하 선생이 파촉령을 넘으며 얼어죽지 않으려고 김준엽 선생과 서로 끌어안고 밤을 새는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며 "이번 장정을 통해 우리가 뉴밀레니엄 시대 신(新)광복군, 신(新)독립군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말했다.

제6차 장정단은 오는 17일 오전 7시 인천국제공항에서 출정식을 갖고 10박11일 간의 대장정에 오른다. 특히 이번 장정 기간 중에는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하북성] 섭현 지방의 조선의용군 전투 지역과 태항산 항일 전투 전사자를 위한 진혼제가 처음으로 열릴 계획이다.

 

 

# 이모저모

이부영 의원이 6기 장정대원들에게 격려사를 하고 있다.●…장준하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부영 의원은 이번 6차 장정의 의미에 대해 각별하게 설명. 이 의원은 "일제 치하 독립 운동에는 큰 흐름이 여러 줄기 있었지만 북한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운동만을 유일무이한 독립운동으로 생각한다"며 "남한도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미주의 독립운동이 주축이고 김구선생은 제외시켜오다가 근년에 임시정부를 편입시키고 있다"고 소개한 뒤, "남북 모두 인정을 하지 않는 잊혀진 독립운동이 있는데 그것이 연안의 독립동맹, 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으로 태항산 전투 등 큰 족적을 남겼다"며 "장준하 선생의 넓은 가슴으로 이들의 독립운동도 우리 속으로 끌어안아 독립운동의 지평을 넓혀가자"고 부탁했다.

●…3기와 5기 장정 단장을 맡았던 함광복 강원도민일보 논설위원은 "두 번이나 단장질을 했다"며 참석자들을 웃음 바다에 빠뜨리고 세 가지를 특별히 부탁. 첫째, 반드시 지도를 가지고 중국 어디쯤 있는지 숙지하고 가능하면 나침반도 가져가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공간 개념을 가질 것. 둘째, 고생할 것도 있겠지만 큰 대륙과 큰 강을 가슴에 담아 올 것. 셋째, 일사분란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한 눈 팔지 말고 인솔자의 지시를 잘 따를 것. 서상섭 국회의원과 김도현 디지털 사상계 대표도 각각 "박정희와 장준하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이 너무나 좋은 선택을 했다"고 격려.

●…유광언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은 "기름진 중국 음식을 먹고 탈이 나지 않으려면 중국술을 꼭 한잔씩은 먹어야 한다"며 "그동안 경험으로 학교에서는 술 한 잔 제대로 못 마시던 학생들도 장정을 다녀온 뒤에는 술을 아주 잘 마시게 되었다"고 격려사를 하는 바람에 '저녁 식사 때 딱 두 잔'을 제외한 금주령을 선포하려던 이준영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아연 실색하기도.

6차 장정 대원들이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의 격려사를 경청하고 있다.●…장정 설명회장에서는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중소기업인 월드패션이 특별히 협찬한 오리털 파카와 장갑이 장정 대원들에게 지급됐다. 월드패션 신수장 사장은 "사업차로 중국에 자주 가서 알지만 추위가 대단하다"며 "뜻있는 일에 동참하게 되어 기쁘고 좋은 경험을 따뜻하게 하고 오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정 설명회는 4기와 5기 장정을 다녀온 한현우(북경대 국제관계학과 유학 중) 등불의 사회와 5기 대원들의 안내와 물품 지급 봉사 등 선배 기수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원만하게 진행됐다. 1기부터 5기까지 선배 기수들은 기수별 소개 시간에 각 기수 별로 청년 등불 대원 특유의 유머를 곁들여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2기와 3기 장정을 다녀온 이기정(ID 아줌마) 등불과 3기 홍현두(ID 곤란한 홍) 등불은 독특한 ID 이름에 걸맞는 어투와 기괴한 행동으로 6기 대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장준하 선생의 차남 장호성씨와 손녀 장정아 등불도 설명회에 나란히 참석. 장정아 등불은 "비디오에 1기 장정 중 탈진했던 사람이 바로 저"라며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청년 등불의 1기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고 기염을 토하기도. 장호성씨는 "이번 장정에는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는 조카 2명도 함께 합류할 것"이라고 소개.

●…장정 설명회에는 장정단에게 특강과 장정 방문 지역에 대한 설명을 해줄 한성대학교 윤경로(한국사 전공) 교수와 구국장정을 후원하고 있는 국가보훈처 이재익, 임성현씨도 참여했다. 또한 장정 기간 중 대원들의 건강을 돌볼 정현주 약사가 건강한 장정을 위한 특별한 부탁을 했다.

설명회가 끝난 후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설명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국회헌정기념관 인근 삽겹살 집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친목을 도모. 김호준 단장은 건배를 제의한 뒤 모든 테이블을 돌며 건강한 가운데 뜻 깊은 장정을 하자고 대원들에게 당부. 설명회에 참석한 선배 기수들은 십시일반 회비를 거둬 뒷풀이 비용을 보조하는 전통을 이어갔다. 뒷풀이에는 2기 등불이자 6기 장정에 간호사로 동행하는 한은정 간호사도 뒤늦게 합류.

●…장정 뒷풀이는 2차 생맥주 집에 이어 3차까지 계속돼 일부 참가자들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택시로 귀가. 뒷풀이 2차 때는 가까운 자리에 앉은 6기 대원들이 서로 나이와 이름, 학교를 소개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 5기 등불 신영민은 특유의 노래 실력으로 후배 기수들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6기 대원 중 4명은 인근 포장마차의 3차까지 동행해 선배들로부터 장정의 에피소드 등 각종 체험담을 듣고 귀가하는 열의.

 

 

# 일본군으로 징집되기 전까지

# 쓰카다 부대에서 탈출을 계획

 

 

# 일본군으로 징집되기 전까지

장준하는 1918년 8월 27일 평북 의주에서 기독교 목사인 아버지 장석인, 어머니 김경문 여사 사이의 4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장석인은 1919년 3월 29일 의주 영산시장 만세 운동 당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제작·배포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이로 인해 일본군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삭주 청계동 산골로 가족 모두가 이사를 하게된다.

유년 시절 장준하는 조부 장윤희로부터 국문, 한문, 수학 등을 배웠다. 1933년 삭주 대관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이 교사로 있던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해 여름 장준하는 숭실중학 교정 게시판에 붙은 동아일보사의 '하기(夏期) 브나로드(민중속으로) 운동' 광고를 보고 문맹 퇴치 운동에 동참한다. 장준하는 1935년 일제의 '강습회 금지령'이 내리기까지 고향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한다.

1934년 부친이 선천 신성중학교의 교목이 되면서 숭실중학에서 시성중학으로 전학한다. 당시 선천은 기독교의 고장이면서 애국자의 고장으로 불렸다. '선천에 사는 목사나 장로치고 애국자 아닌 사람이 없다'는 말이 통할 정도였다고 한다. 장준하는 1938년 3월에 신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숭실전문에 입학할 생각을 하였으나 숭실전문의 폐교로 같은해 4부터 신안 소학교 교사로 3년간 일한다. 교사 재직시 그는 단발령, 치마 저고리 대신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히는 등의 노력으로 학교를 변화시켜간다.

1941년 2월 24세가 된 장준하는 친구 김익준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동양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던 장준하는 이듬해 동경 일본신학교로 전학했는데 당시 일본신학교는 총독부의 탄압으로 국내에서 고등 신학교 교육의 기회를 상실한 신학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곳에서 전택부, 박봉랑, 문익환, 박영출 등과 함께 수학한다. 그러나 그의 유학생활은 일년 반만에 종지부를 찍게된다. 일본이 남태평양전선에서 열세로 인해 학도병도 징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일본은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도발한 뒤 1938년 4월 육군특별지원병령을 내려 조선 청년을 전쟁에 동원하기 시작했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43년 10월 '조선인학도 육군특별지원병제'를 공포하고 전문학교와 대학의 학생 4,385명을 전쟁터로 끌고 갔다. 당시 최남선, 이광수 등의 학병 권유 강연회가 동경에서도 개최됐다. 그들은 '내선일체', '성전(聖戰)필승', '타도영미' 등을 외치며 자원 입대를 선전했다. 이 때 장준하는 부모님과 가족을 생각해서 학도병 지원을 결심하게 된다. 자신의 지원으로 가족을 보호하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1943년 11월 하순 귀국해 이듬해 1월 5일에 김준덕과 노선삼의 맏딸이자 자신의 제자인 김희숙과 결혼한다. 그로부터 2주 후인 1월 20일에 장준하는 평양에서 일본군에 입대한다. 고향땅을 떠날 때 환송회 석상에서 장준하는 일본군 탈출을 예고라도 하듯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해서 꼭 그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는 짧은 한 마디의 답사를 한다(돌베개 p. 15). 장준하는 평양에서 기본 군사 훈련을 받은 후, 같은해 2월 16일에 중국의 쉬저우(徐州) 쓰카다 부대로 파병된다.

 

 

# 쓰카다 부대에서 탈출을 계획

장준하가 배치된 쓰카다 부대는 학도병의 탈출사고가 단 한 건만 있을 정도로 경계가 삼엄했다. 최초의 탈출 주인공은 후에 장준하와 만난 김준엽으로 그나마도 본대가 아닌 파견지에서였다.

쓰카다 부대에서 장준하는 조선인 학도병들과 '잔반불식동맹(殘飯不食同盟)'을 결성해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는 운동을 벌인다. 일본군들이 먹다 남긴 밥 찌꺼기는 먹지 말자는 이 동맹은 배고파 창자가 뒤틀리는 한이 있어도, 민족의 자존심만은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결성되었다. 그러나, 일부 조선인 학도병 중에는 일본군이 먹다 던져주는 것을 먹으면서 생존에 집착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근 부대의 탈출 사고가 잦아지면서 조선인 학도병에 대한 일본군의 눈초리가 사나워지자 해방 뒤 3공화국 시절 육군 장성까지 지냈던 한 학도병이 내무반에서 칼을 뽑아들고 반 강제 협박을 강요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조선인 학도병이 탈출하면 남은 사람이 고생하게 된다며 "이제 또 누가 도망치겠느냐?"는 어이없는 협박을한 것이다. 장준하는 이에 격분해 "이봐, 어찌된 일이야. 그 친구들도 그들이 지닌 애국심에서가 아닐까"라고 추궁한다. 장준하는 자신의 부대 탈출 뒤 동료들이 겪을 일을 생각해 더욱 치밀한 계획을 수립한다(돌베개 p.23-27 참고).

 

# 장준하 선생님의 젊음과 열정을 배우고 싶다. 제6기 장정 대원 참가 동기서 한결같이 언급

제6차 아! 장준하 구국장정 6천리에 참가한 대원들은 모두가 장준하 선생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열정을 배우고자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준하 기념사업회는 6기 장정 출발을 앞두고 참가자들이 제출한 동기서를 분석한 결과 "장준하를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학생들은 물론 장정 신청을 계기로 처음 이름을 들어본 학생들도 장준하의 구국 열정을 배우고 싶었다는 답변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준영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참가 동기서를 부실하게 적어서 탈락된 사람들이 많았다"며 "내년부터 동기서와 재학 대학의 교수 추천서를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6기 장정 대원들의 참가 동기서를 발췌해서 싣는다.

 

●…간단한 장정 소개를 보면서 그때까지 내 머릿속에 한참이나 뒹굴던 생각은 10박 11일로 중국을 싸게 갔다올 수 있다는 어림짐작이었다. 모 제약회사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하는 국토장정 마냥 이 프로그램도 대학생들을 위한 장정 프로그램이로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에 밑져야 본전 아니겠느냐는 심정으로 참가신청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까지 장준하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참가신청서를 다운받기 위하여 장준하 기념사업회 사이트에 들어가 참가 신청서를 다운받고 이왕 신청하기로 한 참가이니 조금 더 잘 써보자는 생각에 이것저것 자료실을 뒤지면서 나는 무언가 내 생각과는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장준하라는 사람의 이름이 너무나도 자주 나왔으며 자료실마다 장준하의 인생과 업적에 대한 글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단순한 여행의 취지로 생각하고 있었던 나의 생각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넘어서서 이 장준하라는 사람에 관한 호기심으로 나를 자극하였다.

 

장준하의 출생과 삶의 여정들에 관한 자료실을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나는 어렴풋이나마 이 장정 프로그램의 본 취지를 그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장준하라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일하였던 청년 중의 하나였으며 70년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던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지금 부끄럽게 고백하건대 나이 21살을 먹고서야 장준하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보았던 것이다. 어렴풋이 이 장정에 대한 참가를 마음에 품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장준하에 관하여 물어보았다. 도대체 이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도 하였고 이 나이 먹도록 장준하라는 사람의 이름 석자 한번 못 들어보았다는 것이 의문스럽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장준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야 라는 나의 물음에 단번에 대단한 분이었다며 대략적인 그 분의 설명을 곁들어주셨다. 대학생이 아직도 장준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느냐 라며 아버지가 나의 무식함에 더 놀라하시는 듯 하였다. 왠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람을 나만 여지껏 몰랐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럽다는 감정과 더불어 이 사람에 관해서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돌베개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시험기간동안 돌베개라는 책을 다 읽도록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구국장정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장준하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번져갔고 돌베개의 장준하는 내가 현재 시험기간이라는 사실을 잊어가면서까지 책을 읽도록 만들었다.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한 기분. 그것이 돌베개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국사책에서나 보았던 민족열사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노력하였는지는 나에게는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만 인식되었다. 남들이 다 달아야 한다기에 광복절마다 의무적으로 태극기를 달았고 어렸을 적엔 학교 행사였기 때문에 국립묘지에 가서 억지로 눈을 감아가며 그 분들을 위해 묵념하였다. 역사적인 사실은 단순히 역사로서만 남겨져있고 나의 삶은 그들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돌베개를 읽으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나를 알게 되었다. 못난 조상이 되지 말아야한다는 확고한 의지 하나만으로 대륙의 6천리를 두 발로 걸었던 사람이 존재하였다. 나는 절대로 하지 못했을 그 일을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말이다.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그렇게 의지 하나만으로 그 역경을 참아낼 수 있다는 사실과 그 광활한 대륙을 돌베개 삼아 걸어갔던 그 사람의 정신력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가능했다. 장준하라는 사람에게는. 그리고 내가 지금 딛고 있는 이 땅을 위해 이름도 없이 쓰러져갔던 청년들에게는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돌베개를 읽으면서 나는 장준하의 그 생생한 어려움을 같이 체험하면서 아파하였고 장준하의 청년 정신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책장을 넘겼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났기에 별다른 애정없이 여겼던 이 나라. 이 나라의 광복을 위해서 그리고 욕된 유산을 나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장준하는 그렇게 대륙을 걸었던 것일까.

나는 장준하의 철저하고도 확고한 신념 앞에서 숙연해짐을 느꼈다. 장준하를 그렇게 이끌었던 힘은 무엇인가.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읽고 난 지금에서도 곰곰히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하였다. 대학에 들어와 이루었던 일이라곤 고등학교때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라 정신없이 놀았던 일이며 어설프게나마 대학생티를 내가며 이곳저곳 기웃거렸던 일밖에 더 있었던가.

 

참가 신청서를 작성하기에 앞서서 나는 내 자신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내게도 존재할까 하는 생각으로 망설여졌다. 단순히 중국여행으로 들떠 알게 되었던 이 장정을 그리고 21년을 살고서야 장준하라는 사람에 대하여 처음 알게 되었던 나의 무지함에 대한 부끄러움이 과연 장준하가 걸었던 그 대륙을 쫓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장정에 참가하여 장준하가 내게 안겨주었던 감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면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용기를 내어 참가 신청을 하였다. 장준하가 걸었던 그 길을 내 발로 직접 느끼면서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이번 겨울에 내게 꼭 주어졌으면 좋겠다.

 

●…일제치하에서는 독립군으로, 해방 후 혼란한 근대사에서는 좌익도 우익도 아닌, 민족주의자로써의 삶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가신 선생의 일대기와, 선생의 평전들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너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라구 말입니다. 저의 삶과 선생의 삶을 비교할 수 는 없지만, 선생의 글과 평전들은 제게 적잖은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무심코 아침 일찍 일어나, TV를 보면서 흘러나오는 애국가 가사를 곱씹어 보았습니다. 종전에 듣던 느낌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생이 일생을 몸소 보여주신 나라 사랑의 길은, 거대하게 보여지는 힘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생에서도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힘도 愛國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축구 경기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어린 남동생의 불끈 쥔 고사리 같은 손도, 해마다, 국경일이면, 깨끗이 빨아놓은 태극기를 다는 아빠의 굵은 손목도, 시장에 가면 국산 채소를 찾는 엄마의 주름진 손도 愛國이라는 우리 앞에서 멀지 않은 그 단어를 넣어 봅니다. 愛國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 갑니다.

 

우리가 주어진 이 땅에서 우리는 편하게 숨쉬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가진 이를 미워하고, 가진 자들은 그들의 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갑니다. 하루 하루를 아둥되며 살아가는 삶이 있기까지, 대한민국은 세계2차대전의 실패와, 일본의 패망으로 단순히 세계사적 흐름에서 주어진 나라일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장준하 선생께서 우리나라를 위한 독립운동을 우리나라에서 펼치지 못하고 먼 중국대륙에서 고생하셨을 모습을 생각하면, 현재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현재의 삶이 죄송스럽게만 여겨집니다. 아울러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중국 대륙에서 바라본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또한 광복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어온, 기득권층의 부정한 행위들과, 정권 쟁취자들의 아전인수격의 정치에 맞서 싸우셨던 선생에게, 비쳐진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또한 현재의 저의 모습을 보시는 선생은 뭐라고 말씀 하실까요?

많은 것들이 궁금합니다. 선생에 대해서도, 태어나면서 정해져 버린 날 낳아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대한민국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풀어져 버린 내 삶의 끈을 이제는 내 스스로가 바로 묶어보고 달려가고 싶습니다.

 

●…장준하 선생은 올바른 신념을 함께 나눌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신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에는 많은 난관이 따르며, 또한 이를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군부세력에게 잡혀가던 그 때. 장준하 선생은 군부정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상계>라는 언론지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 군부정치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다.

나의 경우를 비추어 보았다. 아주 가깝게 학교내의 일을 예로 들어본다. 현재 내가 재학중인 이화여자대학교는 알다시피 학교 앞에 상당한 상권이 밀집되어 있다. 다행히, 이런 상점들과 우리의 교육공간을 나누는 것은 바로 이화교라는 다리이다. 그런데, 학교당국은 이 이화교를 복개하여 주차장을 만들어 돈을 벌어 학교기금으로 비축하겠다고 한다. 이는 당장 재학생 모두가 교육환경을 위협받고 있는 대단한 일이다. 나도 이에 대하여 충분한 비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내 신념을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실천에 옮기지를 못하고 있다.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많은 대학생들도 그럴 것이다. 이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너무나 상업적인 것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용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때에 쓰는 것이 정말 값진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 나 또한 이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나는 이 장정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용기있게 내 자신의 신념을 실천할 수 있을지를 배우고 싶다. 그리고 이를 또한 주위의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솔직히 구국장정 6천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국을 갈 수 있다는 막연한 설렘과 앞으로의 계획중의 하나인 유럽 배낭 여행 연습의 일부로 여기는 정도에서였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된 장준하라는 인물에 대한 글과 그에 대해 느끼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글, 앞서 장정 길을 체험한 선배들의 글, 그를 기리는 사람들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까지 살아온, 짧지만 이십사년이란 시간을 나는 무슨 생각, 어떤 의미를 두고, 어떤 신념으로 살아 왔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신념, 의지라는 것은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지금 나에겐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아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못난 조상으로 남아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장준하 선생님의 6천리 장정을 되밟으면서 그분이 갖게된 의지와 신념을 배우고 앞으로 나아갈 삶의 길을 찾아보고 싶다. 아직 내겐 젊음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가야할 길을 발견하고 장준하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오늘 내가 가는 길. 뒷사람이 가게 될 그 길을 부끄럽지 않은 길로 만들고 싶다.

 

●…이번 장정은 단지 장준하 선생님이 가셨던 그 길을 따라서 한 번 둘러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장준하 선생님의 장정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어서도 또한 장정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나 자신은 장정을 통해서 어떠한 마음가짐을, 어떠한 결의를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저에게 주어진 과제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저는 단지 책을 통해서 만이 아니라, 그 분이 가셨던 장정 6천리 길을 직접 경험해 봄으로써 그 분의 가르침을 마음에 더 깊이 새기고 싶습니다. 젊음의 패기와 열정을 지니고 앞으로의 우리 조국을 이끌어 나갈 빛이 되고 싶습니다.

 

●…2002년이면 26살이 됩니다. 장준하 선생님께서 6천리 장정을 했던 나이와 같아집니다. 1944년 26세의 청년 장준하가 일본부대에서 탈출, 중경임시정부까지의 고난과 시련의 길..희망이 있었던 그 길을 2002년 26세의 바로 제가 다시 걷겠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가슴으로 느끼겠습니다.

 

 

# 참가자 명단

□ 단   장 : 김호준 (언론인)

□ 강   사 : 윤경로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 취   재 : 설문석 (우리원 프로덕션 PD)

□ 의료진 : 한은정 (고대 안암병원 간호사)

정현주 (약사)

□ 인   솔 : 이준영 (장준하기념사업회 사무국장)

高志權 (중국청년여행사 아태부 총경리)

김은아 (장준하기념사업회 총무)

□ 보훈처 : 이재익 (국가보훈처 복지기획과)

임성현 (국가보훈처 기획예산실)

□ 대   원 : 강대중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과)

강영일 (연세대학교 치의예과)

강진호 (서강대 국문과)

경규칠 (세화여고 역사교사)

고정미 (순천향대 중문과)

구승영 (숙명여대 교육학부)

김동훈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김미경 (순천향대 국제문화학과)

김민영 (순천향대학교 국제문화학과)

김애경 (북경대 국제관계학원 박사과정)

김영민 (북경대 법학원 석사과정)

김영상 (명지대학교 산업공학과)

김유미 (가톨릭대 중국학과)

김인혜 (이화여대 중문과)

김주연 (한림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김해은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김현수 (한국항공대 기계설계)

 

□ 대   원 : 김효봉 (연세대 사회계열)

문상원 (서경대학교 생물공학과)

박태준 (한림대학교 언론정보)

박태진 (서울대학교 생물자원공학부)

박현미 (숙명여대 홍보기획학과)

백승민 (숭실대학교 대학원 정보통계)

송정희 (원광대 신문방송학과)

신종호 (북경대 국제관계학원 박사과정)

이동영 (북경대 정부관리학원 박사과정)

이선영 (삼육대 식품영양학과)

이승혜 (성신여대 화학과)

이은영 (고려대 정경학부)

이장원 (북경대 국제관계학원 박사과정)

이정은 (수원대 대학원 산업미술과 도자공예)

이지환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이현주 (서울산업대 환경공학과)

이흥실 (성균관대학교 사학전공)

임선아 (숙명여대 대학원 경제학)

임양묵 (아주대학교 경영학부)

전송현 (동양대 화학공학과)

장원경 (Columbia Univ. Law School)

장원희 (Associate-Salva-Boce insitut Superial International Jean-Pirre-Blivet France)

주해민 (배화여대 전통복식)

현시내 (이화여대 사학과)

□ 중국학생 : 單   偉 (陝西靑年管理幹部學院)

湯喬晶 (陝西靑年管理幹部學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