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 기사 중계 > 둘째날[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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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노하 강변서 무명애국열사를 위한 해원제 열려, 장정단 쓰카다 부대 유적도 방문, 장정 이틀째 쉬저우 거쳐 푸양 도착

# 독립 운동과 분단, 그리고 통일의 길

# 구국 장정 사상 첫 기차 여행

# 이모저모

 

 

# 불노하 강변서 무명애국열사를 위한 해원제 열려, 장정단 쓰카다 부대 유적도 방문, 장정 이틀째 쉬저우 거쳐 푸양 도착

18일 불노하 강변에서 열린 해원제의 제주를 맡은 장준하 선생의 손녀 원경씨가 무명애국열사 신위에 잔을 올리고 있다.장준하 선생 등 일제 치하 중국에서 독립 운동에 헌신했던 무명의 애국 열사들을 위한 해원제(解怨祭)가 18일 오전 중국 장쑤성[江蘇省, 강소성]쉬저우[徐州, 서주] 불노하 강변에서 열렸다.

이날 해원제는 김영민 대원의 사회로 장준하 선생의 손녀 원경 양이 제주를 맡았으며, 영혼의 강림을 청하는 강신을 시작해 고천문 낭독, 장정대원 전체의 재배 등의 순서로 40여분간 진행됐다.

김호준 단장은 축문에서 "독립된 조국 통일 이끌어나갈 우리 후손들, 무궁화 진달래 겨레의 향기 엮어 이제 영전에 축원하오니 님이여 밝은 세상 통일로 우리의 앞길을 비춰주소서"라고 간절히 기원했다. 장정대원들은 조국이 있는 동쪽을 향해 묵념을 올리며 무명 애국 열사들의 뜻을 이어 '신독립군, 신광복군'이 될 것을 다짐했다.

해원제에 이어 장준하 선생이 불노하 강변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부르며 조국 독립에 헌신할 것을 결의했던 행사가 재현됐다. 대원들은 불노하 강변에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 1절을 '작별'의 곡조에 맞춰 힘차게 불렀다. 불노하 강변 행사에는 인근 주민 100여명이 몰려나와 이국 청년들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이에 앞서 장정단은 장준하 선생이 일본군을 탈출하기 직전까지 근무했던 쓰카다 부대(현 중국 공정병지휘학원)을 방문했다. 중국군 부대 측에서는 헌병까지 나와 교통을 통제해주는 등 장정단을 배려했다.

장정단은 이날 새벽 상하이발 쉬저우행 K377 열차편으로 새벽 5시 8분 정각에 쉬저우시에 도착했으며, 불노하 강변 해원제를 마친 뒤 소형 버스에 분승, 오후 4시 25분쯤 안후이성[安徽省, 안휘성]푸양[阜陽, 부양]에 도착했다. 푸양 버킹검 호텔에 여장을 푼 장정대원들은 호텔 7층 회의실에서 장정에 임하는 자신들의 결의를 나누는 시간을 갖은데 이어 윤경로 교수로부터 '독립 운동과 분단, 그리고 통일의 길'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장정단은 장정 사흘째인 19일에는 장준하 선생이 훈련받았던 안후이성 린취안[臨泉, 임천]의 중국중앙군관학교 한국광복군 특별훈련반 유적 등을 답사한다.

 

 

# 독립 운동과 분단, 그리고 통일의 길

한성대 윤경로 교수가 18일 저녁 푸양시 버킹검 호텔 7층 회의실에서 '독립운동과 분단, 그리고 통일의 길'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우리는 약속 민족이지만 세계사에 기여할 바가 큽니다"

18일 오후 안후이성 푸양 국제호텔 7층 회의실에서 열린 6차 구국장정 첫 강연에서 한성대 윤경로 교수는 "5대양 6대주에 우리 민족처럼 넓게 퍼져있는 민족이 없다"며 "최근 중국 내에서의 한류 열풍이나 세계적인 한민족 출신 예술가들이 나타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 우리 민족이 세계사에 문화적으로 기여할 여지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유태인들이 전 세계에 퍼졌다고 하지만 일본에는 없고, 일본인도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반면 우리 민족은 일제 치하 강제 이주 등 가슴 아픈 역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널리 퍼진 민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우리 민족의 문화적인 우수성이 세계사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배워 문화의 내용에 한민족의 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교수는 또 "통일은 시급한 일이지만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므로 화해와 교류, 협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며 "남북의 문제를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한 형제가 서로 다시 합하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의에 이은 질의 응답 시간에는 장정대원들의 질문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일본 식민지 역사 청산을 위한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한 대원은 "박정희 기념관을 둘러싸고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데 친일파의 선정 기준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김호준 단장도 "일제 치하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는 일본의 국위를 세계 만방에 떨쳤는데 이 행위는 친일 행위로 봐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윤 교수를 난감하게 하기도 했다.

윤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조국을 배반한 인사 2천800명을 처단한 프랑스와 달리 우리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하나도 못했다"며 "이미 그들 대다수가 죽었지만 역사적인 차원에서라도 이를 정리하고 용서하는 작업을 해야하며 선정 기준 등 세부적인 것은 계속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구국 장정 사상 첫 기차 여행

5기 총무로 이번 6기 장정에 참여한 김영상 등불이 3층 침대에 짐을 정리하다가 '찰칵'. 제5차 장정까지와는 달리 제6차 장정부터는 두 차례의 야간 열차 장정이 새로 포함됐다. 17일 오후 상하이 일정을 마친 장정단은 이날 오후 9시 11분 상하이발 쉬저우행 K377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상하이역은 한국의 일반적인 역과는 달리 각 노선별로 거대한 대합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등 국제 무역 도시로서 위용을 자랑했다. K377 열차는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침대 열차로 장정단은 객차 한 량 전체를 이용했다. 객차에는 3층 침대가 서로 마주보며 붙어있었다(사진 참조).

일부 장정대원들은 열차에 탑승하자마자 중국 지도를 펴고 나침반을 보며 열차 진행 방향을 가늠했다. 열차 출발 이후에는 중국 술을 나누고 간단한 게임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첫 열차 장정이 시작됐다. 열차에는 한국처럼 도시락과 음료수 및 간단한 과자류를 판매돼 일부 대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K377 열차는 야간 열차로 오후 10시 일제히 소등하지만 장정단의 객차는 자정까지 불을 켜주는 등 배려를 해주었다. 그러나 북경대 유학생을 제외하고는 야간 열차 이용이 처음이라 일부 대원들은 밤새 잠을 설치기도 했다.

열차는 예정보다 조금 늦은 18일 새벽 5시 8분 장쑤성 쉬저우역에 도착했다. 쉬저우역 앞에는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역 앞 가게들이 영업을 하는 등 활기찬 모습이었다.

# 쓰카다 부대의 탈출

# 불노하 강변의 애국가

# 목숨을 걸고 넘은 진포선

 

 

# 쓰카다 부대의 탈출

1944년 7월 7일. 중일전쟁 발발 제7주년 기념일에 장준하는 김영록, 윤경빈, 홍석훈과 함께 쓰카다 부대를 탈출한다. 일본군은 이 날 밤 천황이 하사한 술과 음식으로 긴장이 풀어져 있어 이들은 성공적으로 탈출을 할 수 있었다. 당시의 긴박했던 탈출 상황을 장준하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따따따땅……하고 총소리가 나의 심장을 뒤에서부터 뚫어오는 듯한 착각의 그 순간, 나의 몸이 훌쩍 기울어진 철조망 위로 굴렀다. 바른쪽 손목이 비틀리면서 왼손이 철조망 가시를 함께 잡았다. 놓치면 그대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다. 아무런 감각이 없이 나는 왼손의 힘으로 철조망에 잠시 매달렸다. 이윽고 바른발을 철조망에 걸고 몸을 솟구쳐 뛰어내렸다. 내가 배운 철조망 추월법은 응용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전연 모르겠다....(돌베개 p. 30)"

장준하 일행은 쓰카다 부대 돌산을 넘어 동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렸으나, 곧 길을 잃고 만 하루를 헤메다 일본의 괴뢰군인  왕정위(汪精衛)-중국 국민당의 중심인물로 있으면서 장개석과 함께 손문(孫文)을 보좌하다가 그의 사후 장개석과 대립되어 마침내 중경을 탈출하고, 대일화평을 구실로 괴뢰정권인 남경정부를 세웠다-군의 추격을 받던 중 김영록이 낙오되는 등 위기를 겪다 극적으로 중국 중앙군 소속 유격대에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이 곳에서 이들은 함께 장정을 하게 될 김준엽(金俊燁)을 만나게 된다.

특히 장준하는 이 탈영을 위해 평양에서 생손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행을 고집하는 열의를 보였으며, 쓰카다 부대에 입대한 이후에는 주변 지리를 익히고 교관에게 중국군의 현황을 묻는 등 치밀한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 불노하 강변의 애국가

불로하의 애국가는 이들의 장정과 독립의 감격을 보여주는 곳이다.

"중국의 아침 햇살이 우리들 눈망울마다에서 빛났다. 한포기 풀잎의 이슬방울처럼 우리들의 순수가, 눈망울마다에 맺혔던 것이다. 지고의 순수는 우리를 그토록 감동시켜 주었다. 아직도 나는 그 불로하 강변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다. 가슴에 아로새겨진 그 조국애의 결의. 애국가의 힘이 그처럼 벅찬 것임은, 아직도 감격스러운 회상의 과제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내가 한반도의 자손임은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새삼스러워진다. 그 강변에 선 이후부터." (돌베개 p.77-78)

 

 

# 목숨을 걸고 넘은 진포선

자료를 준비중입니다.

 

 

 

 

 

 

 

# 이모저모

●…장정대원들은 17일 오후 안휘성 푸양에 도착한 뒤 윤경로 교수의 강의에 앞서 한사람씩 돌아가며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원들은 간단한 자기 소개와 함께 참가 동기와 이제까지 소감 등을 솔직하게 말했다. 한 대원은 "생각보다 장준하 선생의 유적지가 보잘 것 없는데 놀랐다"고 첫날 소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자기 소개는 애당초 한 사람 당 1분 가량씩 1시간 정도를 예상했으나 대원들의 열의로 3시간을 훌쩍 넘겼다. 이준영 사무국장은 "과거 대원들은 이름만 대는 3초 소개가 많았는데 이번 대원들은 자기 피알에 능한 것 같다"고 한마디. 그러나 윤경로 교수가 "강의를 짧게 하려고 했는데 대원들의 자기 소개에 감동을 받았다"며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자 모두들 배가 고픈 표정이 역력. 결국 이날 저녁 식사는 오후 8시가 넘어서 시작.

6기 장정대원들이 18일 오전 쓰카다 부대 터인 중국 서주 공정병지휘학원 정문에 들어서고 있다.●…장준하가 1944년 7월 7일 밤 탈출을 결행했던 일본군 쓰카다 부대 터인 쉬저우 시내 중국 공정병지휘학원에서 이준영 사무국장은 "1944년 청년정신은 목숨을 건 탈출과 장정이었다"며 "우리가 이 부대의 정문을 나서며 야밤에 담을 넘던 장준하를 생각하자"고 당부. 대원들은 기념 촬영 뒤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이 지키고 있는 정문을 태극기를 앞세우고 통과.

●…장준하 선생이 쓰카다 부대에서 불노하 강변까지 도착하는데는 닷새가 걸렸지만 장정대원들은 휴식 시간을 제외하면 불과 10여분만에 도착. 장준하 선생이 쓰카다 부대 탈출하면서 넘었던 산은 지금은 도시 개발로 완전히 없어져 일부 장정대원들이 실망하는 표정.

●…불노하 강변에서 해원식과 장준하 선생 일행의 애국가 제창 의식을 재현 한 뒤 김호준 단장은 "우리 민족이 광복은 됐지만 아직까지 분단을 극복하지는 못했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신독립군, 신광복군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장정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일부 대원들은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제창하는 도중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불노하 강변 해원제 제사 음식은 쌀, 보리, 기장, 조, 콩 등 곡식류는 물론 사과와 배, 곶감, 밤, 북어포, 약과, 유과, 술도 모두 한국에서 가져온 것들. 다만 실수로 향을 빠뜨리는 바람에 북경대 유학 중인 신종호 대원이 급히 인근 마을에 향을 구하러 갔지만 시간이 지체돼 급한 대로 담배를 향 대신 사용해 해원제를 시작. 해원제 중 신 대원이 불교식 제례에 쓰는 향을 어렵게 구해와 이를 대체.

●…쉬저우시의 지앙 국제 호텔에서 있었던 18일 점심 식사 때는 때아닌 '자라-오골계', '당나귀-소' 논쟁이 벌어졌다. 워낙 다양한 중국 음식의 재료가 무엇인지를 두고 대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던 것. 김영상 대원이 뿌연 국의 재료는 '당나귀'라고 자신 있게 얘기했으나 곧 이준영 사무국장의 장난 섞인 거짓말에 속아 여기저기 아는 척을 하는 '멍청함'을 드러낸 것. 또 다른 국에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고기가 있었는데 일부에서는 '자라'라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북경대 유학생인 김애경 대원이 종업원에게 확인한 바 '오골계'로 밝혀져.

●…불노하 강변 이동 길에 휴식을 취하던 중 대변과 소변을 보는 곳의 구분이 없는 중국식 남자 화장실을 처음 본 김호준 단장은 "화장실에 왜 문이 하나도 없는거냐"며 매우 당황한 표정. 특히 김 단장이 소변을 보러 화장실을 갔을 때 중국 사람이 뒤에서 대변을 보고 있었다는 것. 김 단장은 "1961년경 대학 재학 시절 제주도에 계몽 활동을 갔다가 화장실에서 돼지(일명 똥돼지)를 봤을 때보다 더 놀랐다"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고 말했다. 차량 장정이 시작된 뒤 칸막이 문이 없는 중국식 화장실을 처음 구경한 여학생들은 한 줄로 길게 줄을 서서 이용한 뒤에는 코를 막으며 나오는 모습.

김호준 장정단장과 윤경로 교수가 차량 장정에 앞서 차량 플래카드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18일 새벽 장정단이 야간 열차 편으로 쉬저우역에 도착했을 때 이날부터 시작된 차량 장정을 함께 할 중국청년여행사 소속 미니버스와 운전기사 아저씨들이 나와서 장정대원들을 환영. 쉬저우 역 앞 주차장에서 차량 배정을 받은 대원들은 쉬저우 시내 쉬저우 국제 호텔에서 간단한 샤워와 아침식사를 마친 뒤 차량에 태극기와 오성기, 장정 플래카드를 부착하고 4박 5일간의 차량 장정을 시작.

●…장정단이 열차편으로 상하이를 출발해 쉬저우로 가는 길 도중 눈비가 계속 내려 장정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 특히 장정단이 술을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며 지나가는 역마다 눈이 하얗게 쌓여있기도. 다행히 자정을 넘기면서 눈비가 그치고 쉬저우에 도착했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어 안도의 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