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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 사흘째 안후이성 린취안시 한국 광복군 특별 훈련반 유적 방문, 장정단 평한선 철도 답사 뒤 허난성 난양시 도착

# 험난한 난양 길

# 장정 차량 "너무 재미있어요"

# 이모저모

 

 

# 장정 사흘째 안후이성 린취안시 한국 광복군 특별 훈련반 유적 방문, 장정단 평한선 철도 답사 뒤 허난성 난양시 도착

김호준 장정단장이 한국 광복군 특별훈련반 교관을 지냈던 리빙영 옹의 아들인 리홍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리빙영 옹은 5기 장정 때까지 장정단을 맞이했으나 지난 12월 숙환으로 타계했다.제6차 아! 장준하 구국장정 6천리 장정대원들이 19일 오전 장준하 일행이 한국광복군 특별훈련을 받았던 터인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안휘성]린취안[臨泉, 임천]의 린취안제일중학교를 방문했다.

이날 오전 8시30분 안후이성 푸양[阜陽, 부양]을 출발한 장정대원들은 1시간 20여분 만에 린취안에 도착해 마중나온 리홍(李洪, 한국광복군 특별훈련반 교관이었던 故 리빙영 옹의 아들)씨 가족과 함께 린취안 시내를 20여분 행군해 학교에 도착했다. 린취안제일중학교는 지난해부터 벌인 대대적인 학교 신축 공사로 본관 건물은 최신식 건물로 완공되었으며 학교 주변에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리홍씨는 "지난해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해마다 두 차례씩 방문하는 한국 청년들을 잘 돌보아 주라고 하셨다"며 "중국 속담에 가까운 이웃은 먼 친척보다 낫다고 하는데 한국과 중국이 그런 관계"라고 말했다.

린취안 쟝자우진(張兆振) 현장도 학교로 나와 "이곳에서 훈련받은 한국의 광복군 청년들이 항일 전쟁을 수행하고 귀국한 뒤에도 많은 일을 한 것으로 안다"며 "장정을 통해 여러분들이 보고 배운 것들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우의가 깊어지리라 확신한다"고 장정단을 격려했다.

김호준 장정단장은 쟝 현장에게 2002년 월드컵 기념 배지를 전달하고 "린취안에서 받은 중국 인민들의 성원을 잊지 않고 후손들에게 전달해 앞으로도 이곳을 계속해서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린취안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장정단을 이날 오후 6시쯤 평안선 철도에 도착해 장준하 선생 일행이 목숨을 걸고 평안선 철길을 넘었던 일을 재현했다.

 

 

# 험난한 난양 길

19일 밤 난양 이동 중 길을 잃어버리고 선도 차가 길을 찾으러 간 사이 중국 운전기사분들이 모여 논의를 하고 있다.구국장정 6천리의 최대 난코스인 '린취안-난양[南陽, 남양]' 구간을 제6차 장정단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비포장 도로와 잦은 공사로 인한 지형지물의 변화로 또 다시 길을 잃고 헤매인 것. 지난 4차 장정 때는 앞차도 안 보일 정도로 짙게 낀 안개로 길을 전혀 볼 수가 없어 난양에 자정이 넘어 도착할 정도로 난코스.

장정단이 린취안을 출발한 시각은 낮 12시 20분 정각. 린취안 중심부를 벗어나자마자 도로 공사가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었다. 차선 구분조차 되어 있지 않은데다 자전거와 행인, 소형 승합차와 공사차량 및 인부들이 뒤엉킨 비포장 도로가 1시간여 동안 계속됐다. 도중에 장정 선도 차량이 길을 혼동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2호차 운전기사가 길 방향이 예전같이 않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지적해 차량을 되돌릴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평안선 철도 횡단 체험을 한 장정단은 이번에는 '도로 폐쇄'라고 적힌 표지판을 만나야 했다. 다리 건설을 위해 도로를 완전히 막아버린 것. 선도차량의 인도로 작업차량 진출입로로 얕은 강물을 넘어 길을 재촉했지만 이상하게 비포장 도로가 계속됐다. 무전으로 운전기사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지자 장정단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 차를 모두 세웠다. 이 때가 오후 7시 25분. 선도차량이 길을 확인하기 위해 차를 되돌려 나가고 나머지 차량 운전기사들은 따로 모여 어디가 바른 길인지를 논의했다. 장정대원들도 가로등도 전혀 없는 막막한 중국 길에서 길을 완전히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차창 밖을 살피며 걱정을 했다.

다행히 20여분 뒤 선도차량이 인근 마을 주민을 태우고 돌아와 무사히 제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후 7시 55분쯤부터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맨 뒤의 7호 차량이 6호 차량의 시야에서 사라져 중간에 장정 차량 전체가 일시 정차를 반복하는 등 어려움이 계속됐다.

결국 장정단이 난양 쟝궈 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0시 40분이었다. 이준영 사무국장은 "답사 때부터 지금까지 일곱 번 이 길을 왔지만 단 한 번도 아무 일 없이 제 시간에 도착한 적이 없다"며 "장준하 일행도 이 부근에서 마적단에게 사로잡히는 등 어려움을 겪은 것을 일깨우기 위해 이런 일도 계속되는 것 같아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 차량 장정 "너무 재미있어요"

차량 장정 7호차 대원들. 왼쪽부터 중국 시안 청년간부학교 샨웨이, 김유미, 이정은, 현시내, 김현수, 김영민, 이승혜, 박한용.18일 쉬저우[徐州, 서주]에서 시작된 3박 4일의 차량 장정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차에서 보내는 강행군이다. 1호차를 이용하는 이준영 사무국장, 고지권 총경리, 김은아 총무를 제외한 장정단원 51명은 8-9명씩 조를 이뤄 여섯 대의 차량에 분승해 차량 장정에 임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재미있는 장정을 하는 차는 김영민(북경대 법학원 유학 중)조장이 이끌고 있는 7호차.

7호차는 웃음과 술, 그리고 진지한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닭 유(酉)자 아름다울 미(美)자'를 쓰는 가톨릭대 중국학과 김유미 대원은 "제가 닭 띠라서 닭 유자를 쓰는 것이지 닭을 닮아서가 아니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승혜 대원은 "차 안이 너무 건조하다"며 샴푸로 정성껏 세탁한 양말을 차 안에 널어 조원들이 아연실색하기도 했다. 현시내 대원은 "3주전 위염 판정을 받았지만 장정에 오기 직전 의사 선생님께 장정에 가서 술을 마셔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며 "어머니도 이 사실은 모른다"고 하며 '백주'를 원샷했다.

답사 지역마다 장정 대원들에게 해당 지역의 역사적 의미와 장준하 선생이 당시 그 곳을 지날 때의 국제 정세를 입심 좋게 설명하는 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대원은 차량 분위기를 이끄는 주역 중 하나. 그는 "지난해 10월 중국 옌벤 대학을 방문했을 때 '샘'이라는 조선족 역사 연구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학생들과 밤늦게 술을 마신 적이 있다"며 "장준하 구국장정에 참가한 학생들이 옌벤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7호차는 차량 장정 이틀째인 19일부터 시안[西安, 서안]에서 열릴 샨시성[陝西省, 섬서성] 대학생들과의 '한중 친선의 밤' 행사 때 독자적으로 중국 노래를 선보이기로 하고 이동 중 가사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 이모저모

●…19일 오전 푸양 호텔을 출발할 때 호텔 방 열쇠 숫자가 맞지 않아 체크 아웃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출발이 다소 지연. 사정인즉 장정 대원 중 한 사람이 방 열쇠를 수합한 김영상 대원에게 열쇠를 전달하지 않고 호텔 직원에게 직접 주는 바람에 숫자에 착오가 생긴 것. 차량 출발 뒤 조장들은 이 일을 전달하며 "열쇠를 직접 호텔 직원에게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

●…린취안제일중학교 방문 시 이곳 현장에게 김호준 단장이 2002년 월드컵 기념 배지를 전달. 현재 중국에는 한국에서 열리는 중국의 월드컵 예선 경기 입장권이 엄청나게 폭등했다고. 북경대에 유학 중인 신종호 대원은 "가장 싼 표가 한국 돈으로 6만5천원인데 중국 내에서 1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며 "이 표만 있으면 관광비자를 쉽게 받아 한국 내 밀입국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언. 사정이 이렇다보니 표를 구한 사람들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내놓고 자랑도 못하고 있다는데 실제로 신 대원의 친구도 이 표를 가지고 있지만 주위에 일언반구도 못하고 있다는 것.

●…장정단 답사 지역의 장준하 선생 행적을 설명해주는 이준영 사무국장이 린취안제일중학교에서 '대실수'를 저질러 장정 대원들에게 일제히 지적을 당하는 촌극이 발생. 이 사무국장은 "장준하 선생이 이곳에서 광복군 훈련을 받을 때 '등불'을 발간하고 식사 당번을 맡았었던 사실은 다 알지"라며 "그 때 감자를 훔쳤던 장소를 김준엽 선생이 1차 장정 때 정확하게 지적을 해주었는데 우리가 있다가 그 지역을 차량을 통과할 것"이라고 설명.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원들이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예요"라고 외친 것. 이 사무국장은 이 지적에 "개떡 같이 얘기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지"라며 가볍게 응수.

●…장정이 사흘째로 접어들면서 감기 기운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생겨나 동행 약사와 간호사들이 긴장. 정현주 약사는 "18일 밤늦게까지 감기약을 달라는 대원들이 방문을 두드렸다"고 전언. 본인도 감기 기운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한은정 간호사는 "첫날 상하이[上海, 상해]에서 비를 맞고 제법 찬바람을 쏘이자 가벼운 목 감기에 걸린 대원들이 있다"며 주의해줄 것을 당부.

●…안후이성 린취안 주변에는 1월이지만 파 수확이 한창. 장정단이 린취안을 출발해 난양으로 향하는 길 곳곳의 시골 장터에는 파를 가득 실은 트럭과 한국의 경운기와 유사한 소형 이동 차량으로 분주한 모습.

●…6차 장정대원들에게 답사 지역 곳곳의 역사적 배경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이 "중국 맥주 맛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 박 연구원에 따르면 맥주에 있어서 '한가락'하는 독일인들이 중국 칭다오 지방에 맥주 공장을 만들었는데 그게 세계적으로 이름난 칭다오 맥주라는 것. '믿거나 말거나'지만 실제 칭다오 맥주는 1903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 광복군 훈련반에서 3개월

# 다시 한번 철길을 넘어

# 충칭으로 가는 길

 

 

# 광복군 훈련반에서 3개월

임천의 도착 장준하 일행의 감격은 이루 말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기대 밖의 환영이요 감격이었다. 물보다 진한 피의 응결성이요 한핏줄의 뜨거운 체온이었다. 또한 같은 설움 속에서 뛰쳐나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동료의식의 강렬한 작용이기도 하였으리라." (돌베개 p.123)

중국 중앙군관학교 임천분교에 한국광복군 훈련반은 일군에 징병되어 중국지역으로 파견오는 한국청년들의 수가 많아짐에 임정과 광복군 총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김학규씨가 안후이성 푸양이란 곳에 주재하면서 탈출학병과 한국청년등을 모병하여 임천분표에 정식으로 군사훈련을 요청하여 특설한 훈련반이다.

그러나 이곳의 군사교육은 나라 없는 민족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이고 있다.

하루의 일과는 중국국기 게양식, 하양식 거행참가와 한두 시간 도수교련과 김학규의 한국독립운동사 강의 청강 등의 할 일없는 상식적이고 초보적 훈련에 머물렀던 것이다. 목총 한 자루 없는 상태의 정신훈련이 고작이었다.

이에 장준하와 일행은 권태로운 일상과 자포자기 속의 일상의 타파를 위하여 자신의 대학 공부를 강의와 등불이라는 잡지 제작을 통하여 그들의 일상에 활력소와 독립의지를 강건하게 하였다.

"『등불』은 진정 우리들의 뜻대로, 등불로써 불을 밝히고, 앞장서 길을 밝히며, 꺼지지 않는 등으로 이 민족 누구에게나 손에 손에 들게 만들어 주고 싶은 그때의 그 뜻을 스스로 짓밟고 싶지 않다. 그것은 가마니를 깔고 누워 받은 최초의 사명감이었다." (돌베개 p.131)

 

 

# 다시 한번 철길을 넘어

1944년 11월 30일 오후 1시. 장준하는 3개월 동안 린취안 광복군 훈련반에서 경험한 무위(無爲)와 충칭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 때문에 김학규 주임(광복군훈련반 주임)의 만류를 뿌리치고 충칭으로 떠난다. 당시 일행은 모두 53명으로, 린취안에 남기로한 13명을 제외한 전원이었으며, 여인 6명과 아이들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충칭으로 가는 길 중 가장 큰 고비는 평한선(平漢線)을 넘는 것이었다. 평한선은 일본군의 주요 보급로로 활용되던 철도로 북평에서 한구까지 중원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다행히 장준하 일행은 평한선을 넘기 전 어느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들과 마찬가지로 평한선을 넘기 위해 집결대기중인 중국 중앙군 사단사령부를 만나게 된다. 마침 장준하 일행 역시 중국군복을 입고 있었던 터라, 중국군 행열의 뒤를 따라 평한선을 넘게된다. 중국 중앙군이 사단 규모로 평한선을 넘어 후퇴한다는 것은 그 내막에 모종의 상호양해가 성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장준하는 알게 된다.

평한선을 넘을 당시의 상황을 장준하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거의 직감으로 철도 근방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앞서가던 부대가 별안간에 구보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들이 별안간 뜀박질로 내달리는 것일까. 상황이 급박해진 것일까. 일군에게 발견된 것인가. 우리도 무의식 속에 구보를 시작했고 무슨 힘에 끌려가는 듯 뛰어갔다. 마침내 자갈 밟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주위는 아직 그대로 고요할 뿐이었다. 아마도 철도에 가까워져서는 뛰어넘기로 미리 명령이 내려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생각 속에 우리도 자갈을 밟았다. 레일이 걸리는 것을 의식했다. 자갈소리가 유난히 크게 귀에 울렸다. 그 소리가 꼭 일군을 깨워 부르는 소리만 같았다. 그러나 일군초소나 불빛 같은 것은 전연 보이지도 않고 또 보일 리도 만무한 것이었다. 죽는지 사는지 모르고 앞사람의 뒤만을 따라 달렸다. 구보는 철도를 넘어서도 멎지를 아니했다. 숨이 턱밑에 걸려서 헐떡였지만, 그 뜀박질의 대열에서 혼자 미끄러지기는 싫었다. 아마 안전지대까지 내리 오십여리를 뛰는 듯 싶었다.” (돌베개, p.175)

 

 

# 충칭으로 가는 길

평한선을 건너온 장준하 일행은 행군을 능률적으로 하기 위해 네 조로 나눈다. 선발대인 1조는 걸음이 빠른 사람들로 잠자리와 식사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장준하 일행이 가는 길은 군인들의 왕래만이 가능했던, 전후방을 연결하는 군용도로였기 때문에 마을 보장(保長, 우리나라의 면장과 유사)들에 대한 군인들의 유숙요청은 다반사였기 때문에 중국 중앙군 군복을 입고 있던 장준하 일행도 별 어려움 없이 유숙요청을 할 수 있었다. 장준하는 광복군훈련반에서 맡았던 취사책임을 연장시켜, 선발대에 속했고 아울러 선발대의 책임까지 지게 되었다. 하루 평균 백 리를 걸어야 했는데 선발대는 아침 일찍부터 걸어서 보통 낮 세시쯤이면 다음 목적지에 도착해야 했다.

잠자리는 어렵지 않게 제공받았지만 양식은 사정이 달랐다. 선발대는 먼저 도착하는 대로 일행들의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린취안에서 떠날 때 가지고 온 밀가루와 그 지역에서 가장 싸게 많이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다가 일행들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행들이 도착하고 저녁식사가 끝나면 보장의 안내에 따라 몇 집으로 흩어져 잠을 잔다. 선발대는 아침을 새벽에 먹고, 점심으로는 꿔빈(밀개떡)을 나눠 가지고, 또 하루 분의 밀가루를 걷어서 떠나는 일을 반복했다.

장준하는 당시 잠자리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저녁식사 뒤에, 겨우 바람막이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광 같은 방으로 분산되었다. 맨바닥에 나뭇가지를 꺾어다놓고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고, 맨바닥에 그냥 드러누워 버리기도 하며 돼지, 소가 있는 헛간 한구석에서 자게까지도 되었다. 전연, 방다운 방은 없었다. 그릇에 콩기름이나 돼지기름을 불고 아무것이나 돌돌 말아 심지로 세워놓고 불을 당기면 아주 훌륭한 등잔불이 되곤 하였다. 등잔불 밑에서 우리는 전신에 가려운 몸을 뒤틀며 이[蝨]사냥을 벌이기도 했다. 이 어두컴컴한 등잔 밑에서나마 옴에 걸려 고생하는 몇 동지들은 돼지기름에 유황을 끓인 그 고약한 냄새나는 약을 홀랑 벗고 전신에 문지르고 있는 광경인 진기하기만 했다”(돌베개, p. 189)

 

●…장정단이 난양으로 향하던 중 소위 '시골 깡패'에게 차가 가로막히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발생. 군청색 중국 인민해방군 겨울 외투를 입은 한 사람이 갑자기 2호차량 앞을 막아 선 것. 1호차에 타고 있던 이준영 국장은 급히 무전으로 "돈을 조금 주라"고 지시하는 것과 동시에 2호차 중국인 운전기사가 차창으로 금액을 알 수 없는 위안화 지폐를 줘 2호차는 통과. 그러나 이 '깡패'가 다시 3호차 앞을 가로막아 서자 2호차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중국어로 "!@#$$%&*%#"라고 하자 뒤따르던 차량도 모두 무사히 통과.

●…김은아 총무가 이준영 사무국장에게 물 대신 술 먹이려다 제 꾀에 속아 넘어간 웃지 못할 촌극도 일어나. 김은아 총무는 18일 오후 식수를 구입하면서 식수병과 똑같이 생긴 병에 담긴 '백주'를 한 병 구입한 뒤 물병에 붙어있던 상표를 떼어내 술병에 부착하고 이 사무국장에게 자연스럽게 먹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차 19일 오후 차량 이동 중 휴식 시간에 기회를 포착. 이 '공작'에는 1호차에 함께 탄 고지권 총경리와 운전기사도 함께 참여. 마침내 이 사무국장이 화장실을 다녀온 뒤 "목이 마르다"며 물병이 담긴 19일 밤 린취안에서 난양으로 향하던 도중 장정대원들이 평안선 철길까지 행군을 하고 있다.박스에 손을 뻗치자 김 총무는 미리 넣어둔 '가짜 물병'을 집을 것을 요구. 고지권 총경리와 운전기사도 이에 합세하자 이 사무국장은 '멋모르고' 한모금 들이켰다가 '컥' 소리를 내며 뱉었을 수 밖에 없었는데. 진짜 사건은 그 뒤. 이 국장이 가짜 물병을 박스에 넣고 진짜 물병을 꺼내 물을 마신 뒤 김 총무가 물을 마시겠다고 병을 꺼내 마시다가 '컥' 소리를 낸 것. 자기가 만든 가짜 물병을 꺼내 벌컥 들이킨 김 총무에게 이 사무국장은 "고것 참 쌤통"이라고 복수의 한 마디.

●…평안선 철도 횡단 체험을 하기 위해 장정단은 차량에서 내려 철길까지 10여분간 어둠 속을 뚫고 행군. 행군 중에 일부 대원들이 '독립군가'를 부를 것을 제안. 그러나 한 소절만에 독립군가는 악기도 없이 가사와 반주가 동시에 나오는 돌림노래화. 앞 쪽의 대원 중 일부가 가사가 안 떠오르자 입으로 "음-음-음-"하며 곡조를 붙이고, 일부 대원은 노래를 계속 불렀는데 뒤편에 있던 대원들이 뒤따라 노래를 시작하면서 독립군가는 아름다운 곡조와 화음이 어우러진 노래로 밤하늘을 수놓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