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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 나흘째 난양, 라오허커우 지역 답사, 1시간여 걸쳐 도보 행군도

# 장준하 관련 유적인 복민병원 보존키로 결정, 라오허커우시 외사판공실 예지아샹 주임 인터뷰

# "한국 학생들의 역사 의식을 잘 배우고 있습니다", 6기 장정 동행한 중국 섬서성 청년관리간부학원 학생들

# 이모저모

 

 

# 장정 나흘째 난양, 라오허커우 지역 답사, 1시간여 걸쳐 도보 행군도

20일 오후 리오허커우에서 상팡으로 이동하는 중 차량에서 내린 장정대원들이 중국의 시골길을 행군하고 있다.제6차 구국장정단이 장정 4일째인 20일 장준하 일행과 깊은 관련을 맺었던 중국 중앙군 난양전구사령부 자리인 허난성[河南省, 허남성]난양[南陽, 남양]시 난양경제무역학교와 중일 전쟁 당시 이 지역을 방어하던 후베이성[湖北省, 호북성]라오허커우[老河口, 노하구]의 이종인부대 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라오허커우에서는 장준하가 입원했던 복민병원 건물도 답사했다.

이날 장정단 일정은 난양의 지역 TV와 신문이 집중 취재하고, 라오허커우 시정부 관리가 직접 안내를 하는 등 중국 측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지난해 건물 재건축의 위기에 처했던 복민병원 건물을 시정부가 역사 유물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장정단원들은 라오허커우 답사 뒤 샹판[壤樊, 양번]으로 이동 중 5 Km를 1시간여에 걸쳐 전원이 도보 행군을 했으며, 이날 오후 5시20분쯤 숙소인 샹판 은도대주점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장정단은 21일 이창[宜昌, 의창]으로 이동해 싼샤(三峽)댐 건설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 장준하 관련 유적인 복민병원 보존키로 결정, 라오허커우시 외사판공실 예지아샹 주임 인터뷰

장정대원들이 20일 오후 후베이성 라오허커우 시내의 복민병원 유적을 답사하고 있다.지난해 장정 당시 건물 재건축으로 소멸 위기를 맞았던 것으로 알려졌던 후베이성 라오허커우 복민병원 건물이 지난해 시정부에 의해 보존되기로 확정됐다.

복민병원 건물 보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라오허커우시 외사판공실 예지아샹 주임은 20일 "이 건물은 라오허커우 시내에 거의 없는 항일 전쟁 유적지"라며 "장준하 선생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건물 자체의 역사적인 의미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복민병원 건물은 그동안 공산당 간부 숙소로 사용되었으나 건물 노후로 붕괴 위험이 있어 주변의 다른 건물과 함께 재건축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지난해 재건축 결정 이후 복민 병원 주변에 있던 건물들은 모두 헐렸지만 예지아샹 주임의 건의로 복민 병원 건물만 보존되어 있다.

예 주임은 "보존하는 것만 결정되었을 뿐 건물 수리와 활용 방안 등은 하나도 결정되지 않았다"며 "수리를 하는데만 적어도 수십 만원(한화로 수천-1억원) 가량의 재원이 필요한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복민병원은 시 공산당의 행정지역 내부에 위치해 외부 관람객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지만 예 주임의 도움으로 1기 장정단부터 지금까지 관람이 가능했다.

 

 

# "한국 학생들의 역사 의식을 잘 배우고 있습니다", 6기 장정 동행한 중국 섬서성 청년관리간부학원 학생들

중국학생 왼쪽이 샨웨이, 오른쪽이 탕차오징제6차 장정에 동행한 중국 샨시성[陝西省, 섬서성] 청년관리간부학원 샨웨이(18·사진 왼쪽)군과 탕쟈우징(21)양은 20일 "장준하 선생의 독립에 대한 정신은 매우 위대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샨웨이 군은 "장정 지역 방문은 물론 버스 여행을 이렇게 오래하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라며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지만 방문한 도시에서 장준하와 그 일행의 행적에 대해서는 모두 이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탕쟈우징 양도 "어두운 밤에 평안선 철길을 넘을 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이번 장정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알게 된 것이 매우 유익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장정 일정 중 샨시성 시안[西安, 서안]에서 열리는 '한중친선의 밤' 행사를 통해 한국 대학생들과 교류해왔다. 특히 샨웨이 군은 지난해 4월 장준하기념사업회 초청으로 이루어진 청년관리간부학원 학생들의 한국 방문에도 동행했었다.

중국 학생들의 장정 동행은 지난 5기부터 시작됐으며 매 기수마다 2명씩 참여하고 있다. 참가자는 청년관리간부학원 측이 성적과 학내 활동 등을 고려해 선발한다. 장준하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다양한 동북아 지역 출신 학생들이 구국장정에 참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 난양에서의 보급

# 라오허커우의 공연

 

 

# 난양에서의 보급

난양 교외에 위치한 중앙군의 전구사령부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 시였다. 그 곳에서 장준하 일행은 식량과 동복, 그리고 외투를 보급받아야 했다. 진교관과 김준엽을 내세워어 전구사령부에 라오허커우까지 갈 수 있는 식량과 동복과 외투 50여벌을 신청했다.

그러나 전구사령부는 50명에게 지급될 보급품조차 확보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2주일 동안이나 난양에서 30여리 떨어져 있는 부락에 방 세 개를 빌려 묵게 된다. 장준하 일행이 이런 보급을 중국군 전구사령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중국군 준위의 계급을 가진 중국 중앙군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 라오허커우의 공연

난양을 떠난 지 사흘만에 장준하 일행은 라오허커우에 닿았다. 라오허커우에서 장준하 일행은 광복군으로부터 친절한 대접을 받았지만, 그 규모는 세 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총사령부의 전방파견대가 아니고 제1지대의 분견대였다. 그들은 장준하 일행 50명이 충칭에 무사히 도착하도록 모든 편의를 주선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장준하 일행은 광복군 제1지대에서 어떤 희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십여 일의 무료한 시일을 보냈다. 그러나 1분견대장은 장준하 일행에게 노하구에 계속 머무르면서 제1지대를 보강시키자는 어뚱한 제안을 해왔다. 이들은 충칭 임시정부 군무부장으로 있던 약산 김원봉의 세력 아래 있던 자들로, 장준하 일행을 자기네 산하 세력으로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였기 때문이다. 장준하 일행에게 지나친 호의와 친절을 베풀고, 헛된 약속으로 비행기편까지 알선해 주겠다는 약속은 그들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장준하 일행은 이 설득에도 불구하고 충칭행을 강행한다. 그런데 문제는 충칭까지 가기 위해서는 험준한 파촉령을 넘어야 했다. 또한 노자와 식량도 큰 문제였다. 게다가 그들은 겨울이 다가왔지만 초혜(짚신) 차림이었다.

장준하 일행은 김준엽을 대표로 선출하여 중국군 제5전구 사령부인 이종인 부대와 접촉, 학도병지원을 장려하는 운동인 <15만학도종군운동>의 선무공작을 벌이기로 했다. 이종인 부대 정훈참모부에서는 임천군관학교로부터 이미 장준하 일행이 졸업기념으로 한 연예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장준하 일행은 임천에서 한 연예프로를 대부분 그대로 살리고, 연극만을 조금 재조정하여 연습에 들어갔다. 장준하 일행은 매일같이 열연으로써 노하구의 중고등학생들의 사기를 드높였고, 결국 이 연극이 노하구 시민의 화제로 번졌고 이종인 부대 정훈참모는 최종공연으로 시민회관에서 한번 더 상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시민회관에서 열린 마지막 공연은 그야말로 성황리에 마치게 되었고, 막이 내려올 때에 장준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동료들은 장준하를 데리고 몇 곳의 병원을 두드렸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복민병원이란 곳에서야 겨우 의사의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장준하는 다음 날 새벽에 주사를 맞고 퇴원을 했다.

장준하 일행은 선무공작으로 인해 충분한 노자를 확보했다. 수입을 공평히 분배했으며 양말과 가죽구두를 한 켤레씩 사서 눈 덮인 고원지대를 넘어갈 준비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 이모저모

●…장정 나흘째 일정은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됐다. 이준영 사무국장은 이날 오전 난양경제무역학교 방문시 "여러분들도 나흘이 지났는데 서로 눈 맞은 사람들은 없냐"고 농담을 할 정도. 장정대원들도 서로 얼굴과 이름을 서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서로 친해졌다.

●…이준영 사무국장은 "장준하 선생과 김준엽 선생은 장정 일행들의 선두로 활동했다"며 "난양시에서 두 분은 시간이 남아 소위 '땡땡이'를 치셨는데 그 때 방문하신 곳이 제갈공명의 사당인 무후사인데 우리도 장정 중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무후사를 가자"고 제안.

●…박한용 연구원은 무후사 방문시 해박한 역사 문화 지식으로 제갈공명과 무후사의 유적에 대해 줄줄이 설명. 가령, 제갈공명은 사상적 전통으로는 법가의 맥을 잇고 있음에도 유교 국가인 중국에서 존경받는 이유는 그의 유비에 대한 충성 때문이라고. 일부 장정대원들은 박 연구원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비문과 건물의 유래를 설명 들으며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무후사 안팎은 물론 장정단이 여장을 푼 샹판 시내에도 거대한 신시가지가 건설되는 등 장정단이 방문하는 곳마다 공사가 진행 중. 무후사는 바닥을 대리석으로 깔고 호수 바닥을 준설하는 등 대규모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으며, 샹판시내에도 고층 빌딩이 우후죽순 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리산 처녀로 장정 기간 내내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던 송정희 대원이 20일 오후 5 Km 행군에 빠지겠다고 해 원인을 둘러싸고 잠시 논란. 송 대원은 "닭을 보면 기절할 것 같다"고 조장에게 얘기하며 차에서 내리기를 거부.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설득으로 행군에 마지 못해 따라 나섰던 송대원은 결국 중국 시골 마을길을 걷다 닭을 보고는 "꺄악"하는 비명을 질러 주변 사람들이 아연실색. 다행스럽게도 송대 원은 이름에 닭 유자를 쓰고 닭띠인 김유미 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한 시간여 행군을 무사히 마쳤다.

불편한 몸을 이기고 5Km 행군을 한 박현미 대원을 10여분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팡파레를 울리며 환영하고 있다. ●…박현미 대원은 몸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5 Km 행군을 무사히 마쳐 전 대원이 환영 의식을 치르기도. 박대원은 장정 대열에서 뒤떨어져 10여분 늦게 종착지에 도착했는데 이 때 전 대원이 두 줄로 길게 서서 팔로 터널을 만든 뒤 힘차게 '팡파레'를 울려준 것.

●…20일 5Km 행군을 무사히 마친 대원들은 태극기와 6기 청년등불 깃발을 휘날리며 '독립군가'를 힘차게 불러 장정의 결의를 다져. 19일 평안선 철도 이동 길의 돌림 노래와는 달리 모두가 한 목소리로 목청껏 부르자 한 대원은 "차량에서 계속 테이프를 들어서인지 자연스럽게 다 외운 것 같다"고 한 마디.

●…샹판 호텔에서 진행된 2차 강의인 '장준하의 장정과 광복군 활동의 역사적 의미' 시간에는 대원들의 활발한 질의 응답이 있었다. 특히 "민족운동사와 독립운동사, 장준하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로 정리되는 질문들이 쏟아져 강의를 맡은 박한용 연구원이 답변에 진땀을 빼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