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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단 충칭(重慶) 도착, 쾌속선으로 양쯔강 680Km 거슬러 올라

# 현직 고등학교 역사 교사 경규칠 대원 인터뷰

# 이모저모

 

 

# 장정단 충칭(重慶) 도착, 쾌속선으로 양쯔강 680Km 거슬러 올라

장준하 구국장정단이 장정 6일째인 22일 오후 7시쯤 이창[宜昌, 의창])발 쾌속선 '장지앙(長江) 9호편'으로 충칭[重慶, 중경]에 도착했다.

장정단은 이날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 아침 식사를 마친 뒤 6시 35분 이창 국제호텔을 나서 무려 12시간여 동안 뱃길 680Km를 거슬러 올라왔다.

뱃길 장정 중 장정단은 장강삼협 등 유려한 풍광 감상뿐만 아니라 팀별로 오는 23일 시안[西安, 서안]에서 열리는 '한중 친선의 밤' 행사를 준비했다. 또 일부 대원들은 게임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차량 장정으로 지친 몸을 달콤한 낮잠으로 달랬다.

장정단은 23일 충칭 임시정부 청사와 광복군 총사령부 등을 방문한 뒤 항공편으로 시안으로 이동한다.

 

 

# 현직 고등학교 역사 교사 경규칠 대원 인터뷰

6기 일반 대원 중 유일한 일반인인 경규칠 대원(세화여고 역사교사)이 22일 오후 중칭 부두에서 단체짐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이번 장정에서 얻은 힘으로 앞으로 10년을 살아가겠습니다"

제6차 장정에 참여한 31명의 일반 대원 중 유일한 일반인인 경규칠(34·세화여고 역사교사) 대원은 자신의 제자 뻘인 대원들과 구국장정에 임하고 있다.

경 대원은 연세대학교 87학번으로 대부분의 장정대원이 2000학번 전후인 것에 비하면 무려 10년 이상 대선배로 지난 97년부터 교단에 서왔다. 그는 지난 93년 서점에서 우연하게 집어든 '돌베개'를 눈물로 읽은 뒤 느낀 감상을 중심으로 '감동적인' 참가 동기서를 적어 보내 전격적으로 참가가 결정됐다.

경 대원은 "중국 내 장준하의 행적을 뒤쫓으며 장준하를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옛날에는 장준하가 절대적인 존재로 느껴졌지만 이제 커다란 물줄기의 아주 작은 부분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장준하는 그러나 행동과 실천이 일치한 순도 100%의 삶을 살았던 이로 돌베개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경 대원은 열 살 아래의 동생들과 밤 늦은 시간까지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장정단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등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문상원 대원은 "형님이 일반 대원들 중 나이가 제일 많지만 늘 부담 없고 편하게 대해 준다"며 "호텔 방에서 우리에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결혼해 아직 신혼인 경 대원은 "장정 출발 당일 새벽까지 10박 11일 동안 집을 비우는 것 때문에 말다툼을 하던 아내가 '건강하게 다녀오고 많이 울고 오라'는 편지를 짐 속에 넣어주었다"며 "많이 울고 오면 삶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던 아내에게 가장 고맙다"고 말했다.

경 대원은 "장준하도 김구도 우리에게 신화가 아니다"라며 "그들로부터 장정이 끝나고 돌아가 개학을 하면 다시 만나게 될 학교의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힘을 받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 충칭으로 가는 뱃길

# 충칭 임시정부청사를 찾아

 

 

# 충칭으로 가는 뱃길

장준하 일행은 승선하여 가지고 있던 공한으로 8일간의 식권을 무료로 받았다. 충칭에서 파동까지 물결을 따라 내려오는 경우엔 3일이 걸리지만, 파동에서 중경으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에는 8일이나 걸린다.

승선한지 4일째 되는 날 일행이 타고 있던 기선은 만현(萬縣)이라는 곳에 기항하였다. 일행은 거리를 쏘다니면서 단 하루뿐이지만 유람객처럼 유쾌한 구경을 하기도 하였다.

 

 

# 충칭 임시정부청사를 찾아

8일만에 장준하 일행은 꿈에도 그리던 충칭에 도착했다. 그러나 배가 닿은 곳은 꿈에도 그리던 임정청사가 아닌 아주 초라한 한 선창가의 부두였다. 막상 도착한 임정청사 역시 초라하기 짝이 없는 단층건물이어서, 일행은 모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임정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일행은 다시 임정을 찾아갔고, 드디어 태극기가 걸린 임정청사에 도착했다. 당시의 감격을 장준하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그렇다, 그것은 태극기였다. 나의 온몸은 마비되는 듯이 굳어졌는데, 몇몇 동지들은 태극기를 향해서 엄숙히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임정 건물 위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나에게는 점점 확대되어 보였다. 휘날리는 기폭마다 나의 뜨거운 숨결이 휩싸여 안겼다. 그리고 태극기의 기폭은 임정 청사가 아닌 조국의 강토를 뒤덮고 있었다. 물결치는 기폭아래 두고 온 조국의 산하아 떠올랐다. 아니, 나의 조국에 지금 분명히 이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환상이었다. 그토록 경건한 기(旗)의 상념이, 거룩한 조국의 이미지위에 드높이 춤추고 있었다. 「조국의 땅 방방곡곡마다 이 태극기의 바람이 흩날리고 있었구나!」 그 때서야 나의 손도 천천히 올라갔다.” (돌베개 p.234)

 

 

 

 

# 이모저모

●…13시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장강이라 불리는 양쯔강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대원들은 23일 시안에서 열린 한·중 친선의 밤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대원들은 중국 학생으로 참가한 탕차오징으로부터 중국 노래를 배웠으며, 장기 자랑에 필요한 준비물을 미리 챙기고, 친선의 밤 행사 순서를 짜는 등 바쁜 모습들이었다.

김애경 대원이 22일 중칭행 쾌속선상에서 남편인 이규일 등불(5기)이 장정 응원 게시판에 올린 글의 내용을 전달받고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북경대 유학생으로 장정에 참가한 김애경 대원이 북경에 남아있는 남편 이규일 등불(5기)과 아이 생각에 눈시울을 적셨다. 김 대원은 22일 충칭행 쾌속선에서 기념사업회 장정중계실 장정응원게시판에 이규일 등불이 올린 글의 내용을 전해 듣고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것. 김 대원은 차량 장정 중에도 같은 조 대원들에게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달랬었다.

●…침묵의 인디언밥, 숫자게임, 토끼토끼, 삼육구…뱃길 장정은 장정대원들에게 원없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호텔 방에서 다른 손님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제'해왔던 대원들은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게임을 즐겼다. 일부 대원들은 게임을 하다 지치면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곧장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뱃길 장정 초입에 21일 오후 방문했던 싼샤댐을 다시 만난 장정단은 강물에서 바라본 위용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한 대원은 "어마어마한 규모에 기분이 나쁠 지경이다"며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오후 8시쯤 장정단이 탄 쾌속선 뒤편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르자 주변 경치를 감상하던 대원들이 일제히 탄성. 특히 태양 빛에 반사된 붉은 강물 위로 장강의 여객선이 오가는 모습이 오버랩되는 모습은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방불케 했다.

●…박한용 연구원, 경규칠 대원 등은 장강을 거슬러 오르며 맥주 2박스를 다 비우는 '술 반, 강물 반'인 뱃길 장정을 강행. 박한용 연구원은 "강호에서 술 없이 어떻게 장정을 할 수 있느냐"며 1등석과 연결되는 2등석 통로에 자리를 잡고 오가는 대원들을 불러 앉혀 강물과 인생, 삶과 장정, 한국 사회와 우리의 미래 등 수없이 많이 주제를 놓고 난상 토론을 벌였다.

●…샌드위치와 사과, 닭날개, 딤섬으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한 대원들은 중국 컵라면으로 시장기를 달랬다. 중국 컵라면은 스프가 4개나 되는데 한국 컵라면과는 완전히 다른 맛으로 중국 음식 특유의 향과 기름이 많았다. 일부 대원들은 스프 없이 컵라면 면발을 따로 익힌 뒤 물을 버리고 '서울-상하이[上海, 상해]' 비행기에서 가지고 온 고추장으로 즉석 비빔면을 만들어 주위의 동료들에게 맛을 선보이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술로 강호의 뱃길 장정을 이끌던 박한용 연구원과 경규칠 대원은 오후 4시40분쯤 1등석 객실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과 '동지가'를 함께 부를 것을 갑작스럽게 제안했다. 박 연구원은 "우리가 쉬저우[徐州, 서주]에서 만났던 불노하가 100% 장준하의 피눈물이었다면 오늘 거슬러오르는 장강은 수천 수백 명의 피눈물이 어린 곳"이라며 "충칭의 임시정부를 찾아가다 목숨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은 채 우리는 충칭에 들어설 수가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는 이어 "인간 관계는 동지적인 관계가 되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여러분들을 동지라고 부를 수는 없다"며 "장정에 참가한 시니어(senior) 그룹이 장정이 끝날 때 여러분들과 동지가를 부르기를 원하다"며 시니어 그룹에게 동지가를 부르자고 제청. 두 곡이 끝난 뒤 신종호 대원의 제청에 따라 장정대원들은 모두 함께 '독립군가'를 부르며 충칭에 도착하는 결의를 다졌다.